성경/강론 (193) 썸네일형 리스트형 12월 17일 대림 시기는 4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4주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의 4,000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인류 탄생부터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렸다는 신앙고백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까지 이어진 그 긴 정량적 시간이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그들의 응답이었던 셈이지요. 오늘 저희가 들은 마태오 복음의 긴 족보는 바로 그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유다인들이 어떻게 응답하며 기다렸는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연대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성경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느님과의 약속을 매번 성실히 지켰던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숭배나 배교와 같이 다른 신들을 섬기기도 했고, 족보에 나오는 이들 중에는 큰 죄악.. 대림 제3주간 화요일 + 찬미 예수님 댁에서 다들 안녕히 계시는지요? 어제 저희는 복음과 주임신부님 강론을 통해 예수님의 권한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온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우리 권한과 삶은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또는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에서와 같이 하느님께 대하는 행동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거부와 따름입니다. 스바니야 예언서에서는 이러한 거부와 따름이 단순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래서 쉽게 누가 따르는지 누가 따르지 않고 있는지 알기 쉽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두 아들의 비유에서처럼 복잡해집니다. 두 아들의 비유는 이러합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라고 대답하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반면 .. 대림 제2주간 금요일 + 찬미 예수님오늘 방송 미사를 손꼽아 기다렸던 교우 여러분,안녕하십니까! 먼저 사과 말씀을 올려야 할 것 같아요.사건은 저번 수요일 미사 때 ‘음성’이 나가지 못했습니다.저의 책임을 다시금 통감하며,제 불찰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기다림’입니다.현재 우리가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1번 첫눈, 2번 코로나 19 백신, 3번 세검정 성당 미사, 4번 그리스도의 재림정답은 모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림 시기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기다리고 고대해야 하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미사 전례 말씀을 다음과 같이 나열만 해도 ‘기다림과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입당송은 영화롭게 내려오시며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노래합니다.본기도는 다시 오실 ..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을 보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하고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고생스러웠던 때를 뽑으라고 하면, 한 번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할 때이고, 두 번째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했을 때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유가 없는 상태입니다. 청년들과 성경 공부를 하면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시지도 않으면서,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셔서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한 마디로 고통을 주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질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악에 대한 물음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하느님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로 만드셨으면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방법은?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맞게 그의 부르심 장면이 봉독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망을 던지는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쿨'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쿨'하게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정말이지, 속전속결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부르심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안드레아 사도와 같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이 속전속결이었습니다. 갑자기 성소가 와서,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부르심 당시에 누구와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습니다.(조금 과장해서) 그런데 저의 부르심은 안드레아 사도와 비슷했지만.. “마라나 타! 오소서, 주 예수님!” +찬미 예수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야속하게도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11월 위령 성월 또한 벌써 마지막에 와 있고,전례력으로 가해 미사는 지금이 마지막입니다.2020년이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슬픈 것은 코로나 19가 유행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다행히 내년에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다고 하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아직은 아니다’특히 신앙의 차원에서 매우 관대하게 이 생각을 적용합니다.아직 성당 갈 때가 아니다.아직 고해성사 볼 때가 아니다.조금만 더 있다가.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처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가 예상하는 때에 오시지 않습니다.그 날이 언제인지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소위 ‘꼼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을 무화과나무 혹은 모든 나무의 모습을 빗대어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로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늦게 잎을 내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는다는 것은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입니다. 잎사귀가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알리는 전조이듯이, 11절과 25절에서 언급한 재림의 전조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리는 전조가 됩니다. 이번 주간 내내 복음을 듣고 있으면 분명 언제가 무슨 일이 있겠구나 하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죽기 전에 종말을 목격할 줄로 믿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대가 지..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이번주간에 저희가 듣는 복음은 우울한 내용입니다. 종말의 전조들과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에 대한 언급,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겪고, 박해를 겪고, 혹은 전쟁이나 대재앙을 겪은 세대에게 이러한 내용들이 훨씬 더 와 닿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들과 같은 마음이 들지 의문이 듭니다. 다소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19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백신이 전 세계에 보급이 되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감염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감염병 유행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러한 방..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