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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쓰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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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의 선교 의무 "... 그리스도와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마치 걸인이 된 것처럼 신자들에게 희사를 요청하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선교교령」, 39항) "마치 걸인이 된 것처럼" 실제로 이런 표현이 있을 줄이야. 위의 글을 읽고 보니 '시노드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란 말의 의미가 새삼 더 깊이 다가온다.
오블완 2일차 작심삼일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작심삼일의 좋은 면이 있다.자신의 니즈가 무언인지 알기 위해서 계속 다른 것들을 삼일 정도 해 보는 것이다.사실 삼일동안 하는 것도 대단하다. 한 시간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삼일 동안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성격은 거의 불변하는 것으로 말한다. 기호와 같은 것이 변할 뿐 선천적인 것은 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를 끈기있게 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를 두루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깊이와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다양한 이들이 있는 것이다.오늘날 육각형 인간이라고 해서, 육각형 인간을 추구하려고 하는 듯싶은데,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싫어하는 것도 있고 등등 사회는 다양한 성격과 성향의 사람들이..
오블완 1일차 이야기 1일차가 맞겠다.오늘 블로그 완성이 아니라. 11월 달 바쁜 달이다.만날 사람도 많고, 강의도 많고. 운동도 해야 하고, 영어 학원도 다니고.오블완도 하고.힘내자.
심심풀이 예전에도 쓴 이야기지만, 글을 쓰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물론 어려운 글 말고 쉬운 글 또는 생각나는 대로 적는 글을 말한다. 아무렇게나 글을 쓰면 쓴 뒤에 그 글자만 보아도 뿌듯하다. 일종의 성취감이라고 할까. 그런데 왜 이런 마음이 들까? 그것은 심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해서 일 것 같다. 막 마음대로 말하는 거다. 속이 후련해지는 거. 물론 그렇다고 논리를 무시하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건 아닌 것이다.   둘째 이유는 희망이라고 할까. 글을 쓰다보면 글력이 좋아질 거라는 희망. 성취감과 연결이 되지만 성취감보다는 좀 더 다른 결이다. 스트레스를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했다는 기분. 그러면서 동시에 글의 재미가 붙고, 글을 더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 안 되는..
오늘 생각 장동선 씨와 조승연 씨가 나와서 암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았다.물론 다 보지는 않았다. 전부 보기에는 시간이 ... 아무튼 잠깐 보면서 생각이 든 건 이거다.암기를 잘하려면 무엇보다도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이와 관련해서 '아하 그렇군!'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글로 적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었구나'와 그래서 '내가 관심사'가 이거구나.   두 번째 드는 생각은유튜브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혹은 취향이 무엇인지를 점점 찾아가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만을 할 수는 없겠지만.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많이 알고 또 발견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행복의 나라⟩ 짧은 후기 행복의 나라 을 재밌게 보았기 때문에 도 기대하면서 보게 되었다. 둘 다 당시 대통령 암살이 배경이다. 이 영화는 인물의 대비를 잘 살렸다. 인물 간의 만남과 대화 안에서 서로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거대한 어둠(?)을 마주하면서 정인후(변호사)는 점점 변한다.(성숙해진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이러니가 많다. 군인은 싫어하지만 군인 변호를 맡고 사람을 죽이는 건 동의하지 못하지만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변호한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삶은 타의든 자의든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좋든 싫든 영향을 준다. 누구는 선한 영향을 누구는 나쁜 영향을. 한 사람이 이 두 영향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한다. 이 영향을 긍정적인 쪽으로 더 돌릴 수 있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는 것이 문..
규칙 물건을 무료로 나눠준다. 그런데 한 사람이 갑자기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더니 두 개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두 개를 받아 간다. 뒤에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세 개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세 개를 받아 간다. 물건을 처음에 나눠줄 때 규칙을 말해주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 같다.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면 본인 것을 나눠준다.
양보와 인내의 미덕 요즘 들어 '양보와 인내'가 얼마나 큰 미덕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용서와 자비라는 사랑의 최고 단계가 있다면 그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양보와 인내'가 꼭 필요하다. 이 덕이 없다면, 일차적으로는 분열이 일어난다. 미움이 생기며, 상대와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증오를 동반한다. 그러나 양보와 인내가 있다면, 그러한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나 국가 관계, 정치 관계 등이 얽혀 있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까지 몰고갈 수 있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