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420) 썸네일형 리스트형 2020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내용이 핵심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이 말씀은 성령을 가리켜하신 말씀이다.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은 뒤, 죄의 용서와 생명의 빵과 음료인 성체와 성혈을 영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는 성령의 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예수님 말씀과 나의 현실이 왜 일치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변명을 해 본다. 나 역시 사마리아 여인처럼 믿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관한 세 가지 묵상 포인트 가톨릭평방송라디오에서 오늘자 오전7시에 박종인 신부님께서 인도해 주신 피정이 있었다. 세 가지 포인트를 짚어주셨다. 1)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셨다. 두 아들 모두에게 나누어주셨다.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큰 아들처럼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2)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뒤 모든 것을 탕진할 즈음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었다. 그 여파가 그에게까지 미쳤고, 배를 채울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에게 위기가 닦치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혹은 회개의 시기로 여기고 극복한다. 3) 작은 아들을 보자 아버지는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즐거운 잔치는 하느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제외.. 사순 제2주간 토요일 2020년 3월 14일 오늘 독서는 미카 예언서를 다룹니다. 미카 예언서의 익숙한 구절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미카 5,1) 미카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7,18 참조)라는 질문의 축약형입니다. 그리고 전례 중에 백성이 지르는 탄성을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미카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불행만을 선포한 예언자로 기억됩니다(예레 26,18). 그러나 미카서가 어두운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징벌은 회심을 촉구하는 호소로도 바뀔 수가 있습니다. 회개하면 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부분을 보면, 미카 예.. 2020년 3월 13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묵상 제1독서 - #꿈쟁이 요셉 복음 -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오늘 독서만 보면, 요셉은 착한 사람이고, 형들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형들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형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보면 꿈쟁이 요셉이 마냥 착한 사람일 수는 없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는 행동들을 자주 하였다. 복음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인데, 여기서 소작인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비유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죽이고, 매질하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아들은 간접적으로 그렇게 대했다. 그들은 왜 그런 마음과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하느님이시라면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일까? 기성 종교(유다교)에서 다르게 생각해 보지 못해서일까? .. 3월 12일 목요일 사순 제2주간 예레미야 예언자는 모두로부터 받대를 받았다. 임금, 관료, 사제, 백성까지.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기쁨이고 즐거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리미야서의 말씀이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17,7) 내 티스토리 명패가 다. 내가 지금 그 사이를 오가고 있는 이유는 아직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것 같다. 행복은 주관적이다. 행복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은 관찰자의 입장에서일 때뿐이다. 그러나 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심판 설교(마태 23,1-25,46) 마태오 복음 23-25장을 심판 설교로 부르기도 하고, 23장과 24-26장을 유다교 심판 설교와 종말 설교로 구분하기도 한다. 유다교 심판 설교(23장)는 유다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던 그리스도교가 어떤 과정으로 변천되었는지를 네 단계로 시사해 준다(브룩스). 첫째 단계는 유다교 회당 지도자들의 말은 다 지키되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보아(23,1-5) 그리스도인들이 유다교 회당 지도자들의 권한으로 제한해 놓은 범위 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다. 둘째 단계는 유다교 지도자들이 제한해 놓은 범위를 넘어서서 예수님을 스승이자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길 때다(23,6-12). 셋째 단계는 유다교 종교 지도자들의 율법 해석과 그들의 행동을 합당하지 않게 여겨 배격하는 것으로 보.. 3월 6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 독서는 악인이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를 살려주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오늘 복음에 비추어 보면, 이는 회개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회개의 정도 혹은 강도 혹은 범위와 기준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의로움입니다. 최근에 코로나 사태로 사제관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페이스북 라이브로 미사를 생중계했습니다. 최근에 녹화된 제 모습을 보았는데, 동작이나 표정이 매우 어색해 보였습니다. 제 자신의 모습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남이 보기에 하느님 보시기에 늘 부족합니다. 다만 이웃과 하느님이 그것을 봐주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렇.. 2020년 3월 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_'오늘의 묵상'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꽉 막혀 도무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시며 요나 예언자를 상기시키십니다. 하느님을 피하여 도망쳤지만 결국 뉘우치고 돌아온 요나 예언자, 또 그의 선포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지체 없이 회개하고 구원을 청하였던 니네베 사람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징은 바로 회개입니다. 가던 길에서 하느님의 길로 돌아오고, 생각을 바꾸어 자신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중에서) 요나 예언자와 니네베 사람들.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들. 요나 예언서에서는 회개의 모습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은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3,8)오늘날 나의 악한 길은 무엇인.. 이전 1 ··· 44 45 46 47 48 49 50 ··· 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