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23) 썸네일형 리스트형 표정 원고를 안 보고 강론하면 신자들 얼굴을 보인다. '얼굴이 보아서 좋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다들 심각한 표정이다. 그러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재미가 없나 보다.' '좀 더 재밌게 해야겠구나, '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재미가 없는 게 아니라, 집중하고 있구나. 어떤 강연자가 철학을 설명하는데, 카메라에 청중들의 표정이 잡혔다. 그런데 내가 강론할 때의 사람들이 짓는 그 표정인 거다. 표정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는 것. 아마 이것 또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찌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을 표정으로 읽을 수 있으랴. 강론 준비나 열심히 하자.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순례 본당 울뜨레아 회원분들 13명과 함께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순례를 다녀왔다. 발음이 '이..' 처럼 들려서 말로 들으면 이상하게 들린다. 10시에 도착해서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순례를 하고 미사를 봉헌했다. 신부님의 강론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셨다. 성가, 독서, 음악 틀고 등등. 전례 봉사자가 없었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에 비하면 다 갖춘 본당에 있다. 강론 때 비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를 반성하게 된다. 순교자현양동산을 둘러보면 세심하게 글로 잘 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침묵이지만 순교자들의 증언록과 십자가의 길 기도문들은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나중에 사순 십자가의 길 때 그 내용으로 신자들과 함께 해야겠다. 동산 담당 신부님이 직접.. 울뜨레아 성지 순례 아침 아무 글 요즘은 아무 글(아무 말)을 쓰는 게 좋다. 한 동안 글을 안 썼다. 일종의 자제라고 할까. 여러 내적인 이유가 있었다. 외적인 이유는 내 글에 광고가 붙는 게 싫었다. 그러면 혹자는 종이에 쓰면 되지 않느냐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건 나에게 재미가 없다. 어떤 재미가 있어야 글을 쓰는 맛도 있다. 또 다른 외적인 이유(내적인 이유이기도 함)는 내가 글을 쓰면 나의 생각 중 틀린 게 있으면 피드백(댓글)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다. 물론 그런 희망은 엄청나게 유명해져야 한다. 유명했을 때야 가능한 이야기다. 비방이 달리면 유명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전에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그러기에 커다란 눈치를 안 보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마치 사병이 휴가 나가기 전에 군복과 군화를 정비하는 ..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 어떻게 될까? 역사에서 보면 왕이 잘못되는 경우가 혼자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거나, 왕의 눈을 멀게 하는 사람들만(이익을 챙기는, 백성은 안중에 없는) 있는 경우다. 개인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공동체와 떨어져서 생활할 경우 판단이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사람의 성향이 잘 바뀌지 않기도 하지만. 주변에 나를 견제해 주고, 충고해 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잘못된 길로 빠질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부류가 첫째가 부모이고, 둘째가 스승, 셋째 동료, 넷째가 선후배, 다섯째 성인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뜸 '그렇게 살지 마라'고 충고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경우는 이미 늦은 경우일 것이다. 분쟁이 휩싸인 경우일 것이다... 블로그 변경 고민 티스토리 운영 정책이 변경되어서 수익을 내는 목적이 아니어도 무작위로 광고가 나온다. 그래서 광고 없는 블로그가 있을까를 찾아보았는 워드프레스나 구글블로그가 있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는 난해하고, 다른 하나는 에디터가 이상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광고는 나오지만 얌전하게(?) 노출되는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꾸미려니 엄두가 안 났다. 덧, 언제 다음블로그는 사라졌는지. 덧덧, 티스토리도 나중에 사라지는 건 아닌지. 사람들의 인정 송길영 박사는 아래 유튜브에 출연하셔서, 자신을 사람들이 ‘작가’로 불러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번에 세 번째 책을 내었는데, 사람들이 ‘이제서야’ 작가로 인정해 준다고 하였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고, 꾸준히 해야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예전에 성지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신부다 신부다 할 때는 네가 신부냐 신부냐 하더니 신부이기를 포기하니까 신부님 신부님 하더라 -‘신부’ 전문. 에서. 새 사제일 때 이 글귀를 보고 감동을 받았었는데,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내용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기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기도와 명상 기도와 명상 예수는 기도하고, 붓다는 명상한다. 예수에 의하면 하느님과의 관계 는 기도 안에서 깊어진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준다 붓다에게 명상은 침묵하고 자성하는 것이며, 구원의 길은 하나의 기술이 다. 자신과의 관계는 명상하면서 찾아야 한다. 예수에게 묵상과 기도는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기 위한 문이다. 붓다에게 깨달음은 초월적 인 것을 신 없이 체험하는 형태를 말한다. 베네딕토 성인이 주창한 "기도 하고 일하라!"라는 모토는 그리스도교적이다. 일을 상대화하는 것은 불교적이다. 불교에서는 세상일보다 내면에 이르는 길이 더 중요시된다. 예수는 의사로 여겨진 반면, 붓다는 심리치료사로 이해된다. 예수는 하 느님과 인간을 잇는 징검다리이다. 이에 비해 붓다에게는 영원과 무상 사이에 다리가 없다.. 이전 1 ··· 4 5 6 7 8 9 10 ··· 10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