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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음 중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와 관련이 없는 것은? 다음 중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와 관련이 없는 것은? 1.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은 12월 7일이다. 2. 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 무렵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 트레바리(지금 독일 트리어)에서 자랐다. 3.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가 된 암브로시오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옹호하였다. 4.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5. 397년에 세상을 떠나 그는, 예로니모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밑에 정답이 있으니 풀고 스크롤 하세요. 정답 2번 트레비리 * 트레바리: 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또는..
6. VERBUM DOMINI_교회의 삶 안에서 하느님 말씀(72항-89항) * 주님의 말씀 권고 내용 중 '거룩한 독서' 관련된 부분이라서 선택했다. 교회의 삶 안에서 하느님 말씀(72항-89항) 성경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만남(72항) 72. 전례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듣고 기념하기 위한 탁월한 장소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만남이 신자들의 마음 안에서 준비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신자들에 의하여 심화되고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72항)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믿는 이들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는 성경에 대한 지식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로마의 귀부인 레타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함 “딸이 반드시 매일 성경의 몇 단락을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 기도한 다음 에는 독서를 하고, 독서한 다음에는 기도를 ..
5. 인용할 때, 출처를 정확하게 표시 글쓰기를 하려고 글감을 찾던 중, 좋은 글귀가 보여서 사용하려고 했다. 그 글귀는 다음과 같다. "신자들이 교회의 신앙에 따라 그리고 살아 있는 교회 전통의 품 안에서 성경을 알도록 교육 받지 않는다면, 그러한 종파들이 뿌리를 내릴 땅을 발견할 수 있는 사목적인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27)"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 27항을 찾아보았다. 어떤 배경에서 이 글이 나왔는지 알고 싶어서다. 아뿔사!!! 없다. 다른 이의 도움으로 27항이 아닌 73항으로 밝혀졌다. 글의 맥락은 '신천지'와 같이 성경을 자구적으로 해석하는 종파들을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성경 교육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배운 게 있다. 1. 그간 나는 출처를 명확하게 안 달았는데, 이제 '쪽', '항'..
4. 현재 도전하고 있는 '한 달 글쓰기'의 효과 예상하기 한 달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글을 쓴다. (사실 좀 쉬고 싶다. 해야 할 게 많아서. 그렇다고 시간만 투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창조적인 일은 고달프다. 하느님께서도 창조하시면서 고달프시지 않으셨을까. ㅍㅎㅎ) 한 달 글쓰기를 하면 무슨 효과가 있을까? 1. 벌써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사고력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요한다. 컴퓨터로 예를 들면, 중앙처리장치를 계속 돌려야 하는 작업이다. 컴퓨터가 연산 작업을 하면 열이 나듯이, 글쓰기를 하면 몸에서 열이 난다. 신경을 계속 써서 그렇다. 하지만 컴퓨터가 그 과정을 통해 결과를 내듯이 끊임없는 생각과 연상하기는 사고력을 깊게 한다. 2. 벌써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무지의 한계를 느낀다. 소재가 고갈된다. 소재를 찾기 위해서 다른 것을 체험해야..
3. 공감하기(고통받는 이들의 이웃, 루카 10,29-37) 뉴스를 보면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는 작은 악 혹은 고통과 대면한다. 예를 들면, 말다툼이 있을 수 있고, 바쁜 일정 때문에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이들이 있다. 간혹 주변 이의 사고나 병, 그리고 죽음 등을 겪게 된다. 이외에는 자기 일에 매몰되어서 하루를 살아간다. 학생은 공부로, 노동자는 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한 주간을 살아간다. 이와 같은 모습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비록 나와 동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무엇이 문제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들어봐야 한다. 더욱이 그 일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또한 내가 맡은 일은 그 일과 관련해서 돌아봐야 한다...
2. 기도를 잘하고 싶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1) 이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비롯해서 기도할 때 마음가짐(간청, 끈기)을 가르쳐 주신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대화 이 두 영역을 분리해서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일단 '하느님'을 알려면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대화'를 잘 하는 게 필요하다. 말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화는 이성뿐 아니라 감정도 사용한다. 이성만 사용하는 것은 설명이나 ..
1. 부적절한 죄책감 vs 적절한 죄책감 사전을 보면, 죄책감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죄ː책-감 (罪責感) 범죄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감정. 위의 설명에서 '범죄'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법규를 어기고 저지를 잘못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죄책감은 우리가 흔히 범하는 양심의 죄까지도 포함한다. 그런데 죄책감에는 부적절한 죄책감이 있다. 모든 것을 자기 죄로 여기거나 지나치게 작은 것들까지도 큰 죄로 여기는 경우이다. "우리가 미사 중에 드리는 '내 탓이오'라는 기도는 결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범한 타인과 세상에 대한 죄의 인식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더 의식하겠다는 바람이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겸손의 자세이다." 부적절한 죄책감 = 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