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87) 썸네일형 리스트형 블로그 변경 고민 티스토리 운영 정책이 변경되어서 수익을 내는 목적이 아니어도 무작위로 광고가 나온다. 그래서 광고 없는 블로그가 있을까를 찾아보았는 워드프레스나 구글블로그가 있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는 난해하고, 다른 하나는 에디터가 이상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광고는 나오지만 얌전하게(?) 노출되는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꾸미려니 엄두가 안 났다. 덧, 언제 다음블로그는 사라졌는지. 덧덧, 티스토리도 나중에 사라지는 건 아닌지. 사람들의 인정 송길영 박사는 아래 유튜브에 출연하셔서, 자신을 사람들이 ‘작가’로 불러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번에 세 번째 책을 내었는데, 사람들이 ‘이제서야’ 작가로 인정해 준다고 하였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고, 꾸준히 해야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예전에 성지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신부다 신부다 할 때는 네가 신부냐 신부냐 하더니 신부이기를 포기하니까 신부님 신부님 하더라 -‘신부’ 전문. 에서. 새 사제일 때 이 글귀를 보고 감동을 받았었는데,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내용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기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칭찬 30대까지만 해도 칭찬이 그리 중요한지 몰랐다. 칭찬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았다. 어쩌면 늘 칭찬 속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칭찬이 일상이었니 그러했는지도 곧 젊음 자체가 칭찬이기 때문에 하지만 칭찬의 소중함은 그러한 젊음과 멀어지고 칭찬의 횟수도 줄어들었을 때, 다가온다. 그러므로 칭찬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들어야 하는 말이다. 성모 발현과 신심 성모 발현과 관련된 책을 동기 신부 권유로 구입했다. 특히 실루바(리투아니아)의 발현 내용이 나와서 단번에 구입했다. 잠깐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토마스의 불신앙이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당연히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다면, ... 당연히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다면, ...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성령의 활동으로. 세례, 견진, 성체, 성품성사를 통해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하느님께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에 더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전할까? 맡은 소임에 충실하자. 그외 시간에 기도하고 연구하자. 영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성인은 시대적 어려움에 맞서 평화의 사도로서 일하셨다. 영화를 보면서 공산주의의 종교 자유 탄압, 노동자 권리 보장, 여성의 지위, 젊은이에 대한 관심 등 세상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한 교황님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영화 중후반쯤에 교황님의 생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평판을 받는다는 장면이 나온다. 누구보다 시대를 걱정했던 분이시지만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물론 교황님은 그 이야기에 구애받지 않으셨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오해나 편견은 진심과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들의 중요한 건 그들을 위한 진실된 사랑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 당시 시대를 교황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순 제1주간 토요일 1. 죽는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습니까? 내가 참으로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묵상해 보십시오. 이 질문은 나에게 어렵다. 나다운 사람이고 싶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나다운 사람. 완전한 사람과 거룩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틀에 박힌 그런 완전하고 거룩함 그래서 어떤 성인과 비슷한(물론 그 어떤 성인만큼 살지 못하지만, 포부는 원대하다) 사람이 아닌, 나다움으로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고별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사람 ...는 그토록 바라던 주님께 오늘 돌아가셨다. 아주 기쁜 날이다. 2. 내가 교회에서 성인으로 시성된다면(무엇이든 가능하므로!) 나의 성인 이콘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그 이콘에 들어갈 상징들을 그리거나 써보십시오. 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1. 덕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부분에 대해 돌아보십시오. 죄를 극복하기 위해 나 자신의 힘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사와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했습니까? 이 점에 대해 시간을 내어 하느님과 대화해 보십시오. 2.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악습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문을 써보십시오.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제 힘으로 죄를 극복하기는 부족합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내가 이 세상의 사자들 앞에 서있는 것처럼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하느님을 신뢰했습니까?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상황을 어떻게 더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까? 이 세상의 사자들은 외적으로 있었지만, 그 문제는 결국 내적인 싸움인 것 같습니다. 그때 하느님께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식별하며, 아직 진행 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대항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어느 신부님 SNS에 있는 인용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했습니다. 군자는 죄를 지은 것 때문에 남에게 성을 낸다. 따라서 [그가] 성을 내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고치면 [그의] 분노는 가라앉는다. 그러나 소인이 성을 내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이전 1 ··· 3 4 5 6 7 8 9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