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23) 썸네일형 리스트형 성유 축성 미사 감사송에서 아버지께서는 외아드님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대사제로 세우시고 오묘한 섭리로 성직을 마련하시어 교회 안에 단일한 사제직이 보존되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소유가 된 백성을 임금의 사제직으로 돌보시고 형제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뽑으시어 안수로 당신의 거룩한 직무에 참여하게 하셨나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류 구원의 제사를 새롭게 하며 주님의 자녀들과 파스카 잔치를 거행하고 거룩한 백성을 사랑으로 이끌며 말씀으로 기르고 성사로 거룩하게 하나이다. 또한 그들은 형제들의 구원과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애써 닮고 끊임없이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여 주나이다. 성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_"저는 아니겠지요?" 복음을 읽으면서 유다에 심리와 행동에 관하여 의문이 들었다. 1. 유다는 왜 갑자기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이었을까? 2.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계획이 있었는데, 다른 제자들이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 "스승님, 제가 당신을 팔아넘기지는 않겠지요?" 하고 굳이 여쭈어 보았을까? 3.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길 계획이 이미 탄로가 났는데도, 왜 무모하게 그 계획을 시행했을까? 그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는 하느님만 아실 것이다. 다만 그 이후 그가 보인 행동을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에서 특이하게도 제자들의 부족한 부분이 한없이 드러나고 있다. 제자단의 으뜸이었던 베드로를 비롯해서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다른 제자들이 십자가 처형 때 숨어 있었.. 성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예루살렘 입성 후, 예수님과 제자단 사이에는 긴장감이 돈다. 예수님의 폭탄 선언은 제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 명은 자신을 배신하고, 예수님이 이제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남았으며, 호언 장담하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는 예고를 예수님께서 하신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 한다. 아드님이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방법을 이해하려면, 그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복기해 봐야 한다.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은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파스카를 말이다. 성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_잔인하지만 거룩한 주간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7 Forgiven by Daniel Gerhartz 복 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1 제 목: 잔인하지만 거룩한 주간 성주간이 어제 시작되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스라엘 임금님, 높은 데서 호산나!"(따름 노래) 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해야 하지만, 코로나 19로 조용히 지나갔다. 예수님 오심을 맞이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이틀 전 사건이다. 참고로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 도식은 아래와 같다.(12-19장) 1. 베타니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림 2. 임금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3. 그리스 사람들이 찾아옴. 예수님의 마지막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_기다림의 끝은 그분의 사랑 십자가 아래서_갓등 중창단 전례적으로 오늘부터 거룩한 주간이 시작된다. 그 시작은 예루살렘 입성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3년 간의 공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러 그곳에 가신다. 하느님의 때가 온 것이다. 수난과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짊어지기 위한 여정의 시간이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심신의 피로도가 쌓여만 간다. 묵묵히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이제 신자 없이 사순 시기를 보내고 성주간 맞이하고, 신자 없이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려 한다. 목자 없는 양 떼가 아니라, 양 떼 없는 목자다. 더 나아가 어쩌면 목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시간까지 왔다. 이렇게 비유하면 불경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비슷하다. 아버지 하느님이 안 계신 것과 같은, 신성.. 사순 제5주간 토요일_예수님께서도 '시청률'을 의식하셨다?! 제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21ㄴ-28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예수님께서 '시청률'을 의식하셨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인 조세호 씨가 초대손님인 나영석 피디(1박 2일 제작)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출연진 섭외 기준이 무엇인지요?" 나 피디님은 "시청률" 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시청자를 의식하며 TV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물론 단순한 답변이고 이외에 수많은 고민을 할 거라 생각된다. 그런데 시청률을 의식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는 시청자를 배려해서 만든다는 것이 될 수 있다. 부정적인 의미는 윤리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자극적인..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_하느님 모독 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10-13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1-42 1. 미움받는 두 사람 독서는 군중의 고발과 이에 대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반응을 다룬다. 군중이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왕국의 몰락을 예고한 데에 있다("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예레 1,10). 예레미야 예언자의 예언이 그들에게 달콤(?)하게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우 쓰리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험난한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 역시 오늘 복음을 보면 예레미야처럼 '유다인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예수님께 믿은 '많은 사람'은 그분을 좋아했지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이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 사제직의 본질 사제직의 본질 2. (...) 실제로, 사제들의 교역은 복음 선포에서 시작되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서 그 힘과 가치를 길어 올린다. 그 목표는 “구원을 받은 온 나라, 곧 성도들의 공동체와 사회가,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우리가 이 위대하신 머리를 지닌 몸이 되도록 당신 자신을 바치신 대사제를 통하여, 하느님께 보편 제사로 봉헌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들이 그 교역과 생활로 추구하는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자유로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온 삶으로 이를 드러내는 데 있다. 따라서 사제는 기도와 경배에 전념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며, 다른 성사들을 집전하.. 이전 1 ··· 87 88 89 90 91 92 93 ··· 10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