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87) 썸네일형 리스트형 <스스로 행복하라> "자기 반성이 결여된 종교는 온전한 종교일 수 없다." 법정스님 올해 만약 휴가갈 수 있다면... 국내 성지 돌면서 아래처럼 순례기를 한번 써 봐야겠다. 오오무라(大村) 순례지 - 오오무라(大村) 순례지 오오무라(大村)는 전국시대 처음으로 불교도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영주 오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 1533-1587)의 영지였다. 그는 1563년 바르톨로메오로 세례를 받았고 그 가족들과 가신 그리고 happyjeje.tistory.com 코로나 19로 코로나 블루일 때 코로나 19로 당분간 사람들을 못 만난다고 하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때 예기치 않게 마스크 선물과 비타민 선물을 갑자기 받았다. 또 예수님이 내 기분을 알고 선물을 보내신 게 아닐까 싶다. 나중에 천국가면 고맙다고 인사해야겠다. 나 : 예수님 그때 선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수님 : 그거 내가 보낸 거 아니야! 나 : 예수님이 그 사람들한테 사랑을 주셨잖아요. 예수님 : 그건 맞아. 나 : 하하하 강론 쓰는 모습이 비슷하구나. 아프리카 선교 간 신부님이 기대에 차서 선교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상은 '삼시세끼'라고 했다. 음식 재료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어느 유투브 신부님은 무언가 멋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원고 작성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주님 말씀을 거룩하게 전해야 하는데, 실상은 방 안에서 성경으로 골머리 썩고 있다. 사는 게 겉으로는 멋있게 보여도, 실상은 비슷하다. 하느님은 이 모습을 다 아시니, 아마 실시간으로 보시면서 채널 돌려 가며 웃고 계시지 않을까 싶다. 아이고 애쓴다. 쉬면서 해라. 케어와 매니지먼트(Care and management) 케어는 돌보는 것이고 매니지먼트는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강사가 삶에서 이 둘이 필요하다고 한다. 케어만 있어서도 안 되고 오로지 성장만을 위한 매니지먼트만 있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떤 입장에서 주로 살아가는지 보게 된다. 매니지먼트가 훨씬 강했다. 뱀처럼 슬기롭지 못한 매니지먼트 말이다.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사랑보다는 계명 준수를 강조한 게 아닐까 싶다. 어려운 상황에서 성당에 오는 이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전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전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동안 너무 매니지먼트 위주의 생각과 말이었다면, 균형점을 맞춰야 하겠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말 하나만 케어였다. 다시 생각해 보자. 코로나 19로 경제적 어려움, .. 내가 만일 부모라면 내가 만일 부모라면 기도하는 자녀를 보고 있을 때 어떤 심정일까 내가 만일 부모라면 공부하는 자녀를 보고 있을 때 어떤 마음일까 내가 만일 부모라면 일하고 있는 자녀를 보고 있을 때 어떠할까 내가 만일 부모라면 봉사하고 있는 자녀를 보고 있을 때 어떤 마음일까 하지만 내가 만일 부모라면 위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자녀를 보고 있을 때 어떤 심정일까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드실까 예수님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바라보기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희열을 느낀다. 높은 산을 등반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 강도 높은 훈련, 스포츠 등을 보면 단순히 지금 나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향해서 분투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 대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 나는 예수님까지도 이렇게 여길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이는 예수님이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라는 고백이다. 이러한 고백이 나온 배경은 그분께서는 말씀과 행적으로 기적을 보이셨고, 마침내 부활한 모습을 다수에게 보이셨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극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사람들은 그분의 인간됨에도 매료되지만, 신성에 더욱 기댄다. 예수님은 성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인 죽음을 극복하고 .. 거미와 나 그리고 신 거미는 거미줄을 엮으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거기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 거미줄을 부순다면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이와 관련해서 신이 나를 관찰한다. 신의 관점에서 나나 거미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신이 나를 내친다 해도 신 입장에서는 별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을 그렇게 놓아두지 않았다. 창조 때부터 종말 때까지 말이다. 신 왜 그렇게 인간을 사랑할까. 아마도 신은 인간에게 내가 너를 그렇게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글 쓴 장소 : 지하철 안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