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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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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토요일 1. 죽는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습니까? 내가 참으로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묵상해 보십시오. 이 질문은 나에게 어렵다. 나다운 사람이고 싶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나다운 사람. 완전한 사람과 거룩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틀에 박힌 그런 완전하고 거룩함 그래서 어떤 성인과 비슷한(물론 그 어떤 성인만큼 살지 못하지만, 포부는 원대하다) 사람이 아닌, 나다움으로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고별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사람 ...는 그토록 바라던 주님께 오늘 돌아가셨다. 아주 기쁜 날이다. 2. 내가 교회에서 성인으로 시성된다면(무엇이든 가능하므로!) 나의 성인 이콘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그 이콘에 들어갈 상징들을 그리거나 써보십시오. 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1. 덕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부분에 대해 돌아보십시오. 죄를 극복하기 위해 나 자신의 힘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사와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했습니까? 이 점에 대해 시간을 내어 하느님과 대화해 보십시오. 2.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악습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문을 써보십시오.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제 힘으로 죄를 극복하기는 부족합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내가 이 세상의 사자들 앞에 서있는 것처럼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하느님을 신뢰했습니까?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상황을 어떻게 더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까? 이 세상의 사자들은 외적으로 있었지만, 그 문제는 결국 내적인 싸움인 것 같습니다. 그때 하느님께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식별하며, 아직 진행 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대항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어느 신부님 SNS에 있는 인용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했습니다. 군자는 죄를 지은 것 때문에 남에게 성을 낸다. 따라서 [그가] 성을 내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고치면 [그의] 분노는 가라앉는다. 그러나 소인이 성을 내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나는 요나의 표징을 믿는 사람으로서 살고 있습니까? "모든 표징 중의 표징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하늘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려오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으로 올라가심입니다."(사순묵상) 믿는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가? - 나에게 있어서는 믿어 가는 중이 맞는 표현 같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수난 이전에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여겼지만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요나의 표징'을 부족한 나로서는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세상 끝나기 전에 깨닫기를 희망한다. 아버지 뜻대로 말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성 대 레오 교황님의 27의 내용 중 이런 글귀가 있다. "낯선 이들이 받아들여지고 바깥 사람들이 상속을 받습니다..
사순 제2주간 화요일 프란치크코 교황은 성령을 자주 '잊힌 분'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잊고 살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나는 삶 안에서 성령께 얼마나 기도했는지 돌아보고, 더 자주 그분을 찾으십시오. - 체나콜로 기도하면서 성령을 부르며, 성령 초대로 시작한다. - 성령 기도회 미사 때는 성령을 더 자주 의식하게 된다. 성령께서 내 마음과 삶을 충만케 해주시도록 청하며, 그 기도를 글로 적어보십시오. - 오소서, 성령이시어, 주님 저를 성부와 성자의 품 안으로 이끄소서. 그리하여 제 삶이 주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모두가 이웃을 도와야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종종 각 사람에게 특별한 소명을 주십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19로 사회의 활동에 제약이 생겼을 때, 의료진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소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때 방송으로 소통하려고 했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눈 대중으로 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해서 하고 있지만.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위기의 순간에 나만의 노력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특별한 소명(?)처럼 생각된다. 이 특별한 소명은 언젠가 또다시 누군가에게 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법을 식별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적어보십시오. "..
사순 제1주일 지금 현재 나의 광야는 무엇입니까? 어떤 특별한 상황인가요. 대하기 힘든 사람인가요? 영적으로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내 고민을 예수님께 봉헌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광야란 무엇인가? 사막과도 같은 곳. 문명과 떨어진 곳. 그러기에 사람과 접촉이 없는 곳. 의식주가 불편한 곳. 그러므로 다른 즐거움을 찾아서 하기가 어려운 곳. 쾌락이 없는 곳. 하지만 죄를 지을 기회가 없는 곳.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곳. 극한의 상황. 그러기에 유혹이 도사릴 수 있는 곳. 이렇게 광야에 관해 정의를 내려도 나의 광야는 어디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의 광야는 오지 않았거나, 벗어났거나, 모르거나 한 것 같다. 아직 광야에 갈만큼의 영적 진보 단계는 아닌 듯 싶다. 세례를 통해 내 안에 부어진 능력을 잘..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나 자신이 죄인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언제나 이 진리 안에 살 수 있도록 청하십시오. 산상설교에 근거에서 보면, 얼마나 죄를 많이 짓고 사는지를 깨닫게 된다. 주님은 제가 죄인임을 깨닫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이런 저를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