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에서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성모님께서 당시 어떤 고통을 겪을셨을지를 알아보면 그 고통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모님께서 생전에 일곱 가지 고통을 겪으셨다고 <성모 칠고> 있습니다.
곧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시몬의 예언을 들었을 때, 이집트로 피난 갈 때, 예수를 잃고 찾아 헤맬 때, 십자가를 진 예수를 만났을 때, 못 박혀 죽은 예수 앞에 섰을 때, 십자가에서예수의 주검을 내렸을 때와 묻을 때 겪은 고통을 이릅니다.
이 중 오늘은 못 박혀 죽은 예수 앞에 섰을 때의 성모님의 고통을 <부속가>를 통해 같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참고로 <부속가>는 덧붙인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6세기경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개혁하기 전에는, 모든 축일 미사에는 거의 다 있을 정도로 많은 부속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반적인 것이었는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 네 개만 추렸습니다. 곧 주님 부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성체 성혈 대축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세 개는 대축일이어서 나름 이해가 되는데, 왜 고통의 성모 마리아 부속가는 선택을 받았을까요?
아마도 이 부속가는 너무나도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러면 부속가를 살펴보면 이러합니다.
1. 아들예수 높이달린 십자곁에 성모서서 비통하게 우시네.
2. 섧고설운 슬픔고통 성모성심 칼에찔려 참혹하게 뚫렸네.
3. 독생성자 수난하니 여인중에 복된성모 애간장이 다녹네.
4. 아들수난 보는성모 맘저미는 아픔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4절까지는 성모님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아들 예수를 봉헌하러 갔을 때, 시메온의 예언 중에 성모님의 고통을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정도라고 표현하였는데,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일 것 같습니다.
5절부터 다시 보면,
5. 예수모친 이런고통 지켜보는 우리죄인 누가울지 않으리?
6. 십자가의 아들보며 함께받는 성모고통 누가슬퍼 않으리?
5-6절은 성모님의 고통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반어적인 의문문을 사용해서 공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7절부터 보면,
7. 우리죄로 채찍모욕 당하시는 아들예수 성모슬피 보시네.
8. 기진하여 버려진채 죽어가는 아들보고 애처로이 우시네.
7-8절은 채찍질 당하시는 장면을 보시는 성모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7절인데요. 우리 죄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죠.
공감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우리 또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3자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죠.
9절부터 보면,
9. 사랑의샘 동정성모 저희들도 슬퍼하며 함께울게 하소서.
10. 그리스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제마음에 불이타게 하소서.
11.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새겨 주소서.
12. 저를위해 상처입고 수난하신 주님고통 제게나눠 주소서.
13. 사는동안 십자고통 성모님과 아파하며 같이울게 하소서.
14. 십자곁에 저도서서 성모님과 한맘으로 슬피울게 하소서.
15. 동정중의 동정이신 성모님의 크신슬픔 저도울게 하소서.
16. 주님상처 깊이새겨 그리스도 수난죽음 지고가게 하소서.
17. 저희들도 아들상처 십자가위 흘린피로 흠뻑젖게 하소서.
18. 동정성모 심판날에 영원형벌 불속에서 저를지켜 주소서.
19. 그리스도 수난공로 십자가의 은총으로 보호하여 주소서.
20. 이몸죽어 제영혼이 천국영광 주예수님 만나뵙게 하소서.
여기까지 보면 우리 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성모님과 함께 아파하며 그분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길을 걸어가야 갑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하고 주님의 공로로 주예수님을 만나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성지 순례를 가면, 장시간 무릎 꿇고 기어가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당연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게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동참하며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아마도 성모님과 예수님의 고통에 속죄하는 신심이겠지요.
성모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받아들였고요.
우리 또한 각자의 십자가의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주님과 함께 지고 가다보면, 저희 역시 주 예수님을 만나뵙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