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1,19-27
마르타의 어록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믿음. 물론 맹목적이거나 맹신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녀는 자기가 믿고 있는 한계 안에서(아직 부활 이전이기에) 예수님께 드린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의 믿음이 거짓이었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예수 부활을 이미 체험했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타의 어록은 이제 나에게 넘어왔다.
나는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다. 나는 주님께 어떤 고백을 해야 하는가? 만약 마르타와 같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지금 나로서는 이렇게 고백할 것 같다.
"주님,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를 만나게 해 주소서."
"예, 주님, 당신은 지금 여기 저희와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그런데 아직 이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아직 믿음이 약하다. 주님을 직접 뵈올 때, 그 신비가 밝혀지거나,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현세에서 그 진리를 깨닫기를 오늘 마르타 성녀에게 전구해 본다.
'성녀 마르타!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