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사랑을 향해
5월은 성모성월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신 성모님을 기리며 우리 또한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드님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사랑은 단순히 모성적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하느님을 배제한 혈연으로 성자 아드님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수태고지, 성모영보, 주님 탄생 예고 후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결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처녀가 잉태하면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성모님은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큰 사랑의 표양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5,12)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계명이고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아직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이기 때문에, 얼마큼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어떤 이는 '이 정도면 나는 충분히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기준점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보면,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나중에 죽음과 부활로 충분히 예상이 되었지만), 가장 큰 사랑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거라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목숨 바쳐 사랑하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곧 무한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 외에도 두 가지를 오늘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당신과 친구과 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곧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이 명령한 것을 지켜야 하고 그것을 지킬 때, 그들은 예수님과 친구가 되며, 친구가 되면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들은 일들은 모두 알게 되며, 그것은 복음을 전해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한 청을 듣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서로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십자가 들어 높이시어 인간의 죄를 없애주신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며, 인류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그리고 다가올 문제들은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못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지금 나는 주님께서 부여하신 사랑의 임무를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찾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묻듯이, 당신의 계명과 명령을 나는 매일 실천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사랑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