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법칙에서 뉴턴이 제시한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관성의 법칙이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입니다. 그런데 관성의 법칙은 물체만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에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면, 꾸준히 미사나 주회에 나오는 사람은 계속 나오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코로나 19로 외부의 강제로 인해 그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 다음부터는 다른 요인이 없을 때 나오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과 심리는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가 관성의 법칙과 인간행동의 연관성을 말씀드린 이유는 오늘 복음에 ‘회개한 자캐오’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캐오는 세관장이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작아 군중에 가려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중을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행동을 눈여겨 보셨는지, 자캐오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자캐오는 세관장이며 부자였습니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았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에 살았던 대로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이아마도 앞질러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라도 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그에게 다가오자, 그는 그동안 모은 재산의 반과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되돌려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예수님 덕분에 과거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구원이 내린 것입니다.
자캐오의 작은 행동 하나와 예수님의 만남이 구원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1독서의 마카베오기 하권에 나오는 율법 학자 엘아자르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마카 6,30)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캐오’나 ‘엘아자르’의 경우와 같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 응답하였습니다.
오늘 이 미사가 우리에게도 축복이 되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응답의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