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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연중 제6주간 금요일

제1독서: 야고 2,14-24.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 이에게 말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아들 바친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이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과 실천으로 의롭게 된다.

 

복음: 마르 8,34-9,1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

하느님 나라에 살기 위해서

 

예수님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이 각자의 삶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꼭 순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학교 교가의 가사 첫소절이 이러합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몸마저 버렸어라.” 

참고로 여기서 진세는 티끌세상을 뜻합니다.

 

수도자의 경우에는 복음 삼덕을 사는 것이며,

 

한 가정의 부모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에 맞게 사는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누구는 크게 보이고, 누구 것은 작게 보이고 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내꺼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어떤 해결 방법을 사실 저는 모릅니다.

예를 들면, 중증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를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 라면, 포기하지 말고 너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그 다음은 당신께서 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자신의 십자가의 크기의 문제 보다는 지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지고 완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분들은 힘드시더라도 주님 바라보시면서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미사 중에 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제1독서에서 야고보서의 저자는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 강조합니다.

믿음은 실천으로 완전해 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기쁘게 하며 그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주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기를 이 미사 중에 다짐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