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미카 예언서를 다룹니다. 미카 예언서의 익숙한 구절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미카 5,1)
미카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7,18 참조)라는 질문의 축약형입니다. 그리고 전례 중에 백성이 지르는 탄성을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미카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불행만을 선포한 예언자로 기억됩니다(예레 26,18).
그러나 미카서가 어두운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징벌은 회심을 촉구하는 호소로도 바뀔 수가 있습니다. 회개하면 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부분을 보면,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미카 7,19-20)
오늘 복음은 돌아온 아들의 비유인데, 그 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한 후에 다음과 같이 회개합니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루카 15,18 참조, 복음환호송)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릴 때 보면, 저는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고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시인하고 잘못했다고 빌 때는 이미 사건이 크게 터진 뒤였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 수많은 잘못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일이 커지기 전에 잘못했다고 했으면, 당시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지금도 잘못을 시인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아니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점점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작은 아들이나, 큰 아들처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미카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고,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입당송과 화답송에서처럼,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각자는 주님을 다르게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는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시기라 여겨집니다. 아니, 돌아오기만을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그러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께 마음을 돌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며 살아가기를 다짐해 보면 좋겠습니다.
참조: 주석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