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연구(마태 19,3-12) : 혼인과 이혼
- 이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풍조 가운데, 이혼할 수 있는 적법한 근거에 대해 다룬다. 모세 율법에는 아내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는 경우 남편이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규정되어(신명 24,1) 이혼을 아내의 입장이 아니라 남편의 입장에서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어 라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였다.
1) 힐렐은 율법 규정을 폭넓게 적용해 아내가 요리를 못해도 소박할 수 있다고 보았다.
2) 샴마이는 율법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 간음한 경우 외에는 아내를 소박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3) 아키바는 심지어 남편이 아내보다 예쁜 여자를 만났을 때에도 소박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미쉬나⟫, ⟨이혼장 규정⟩)
예수님은 간음 외에는 아내를 소박해서는 안 된다는 샴마이 학파의 엄격한 견해를 따르셨다.
- 예수님은 바리사리사이들의 문제 제기에 라삐들의 논증 방식을 따라 하느님이 사람을 남녀로 창조하셨다는 구약성경의 근원적인 이야기(창세 1,27; 2,24)부터 제시하신다. 더 오래되고 본래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권위를 인정받는 고대성의 법칙에 따라 이혼 규정을 전해 준 모세보다도 사람을 창조할 때 하느님이 정해 주신 규정이 우선한다.
참조: 신약성경 주해
2. 말씀묵상
복음은 혼인과 독신에 관해 다루고 있다.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독신으로 혼자 산다.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서 살거나 자녀를 낳지 못해서 자녀 없이 살거나 입양을 해서 살기도 한다.
독신의 경우 비혼을 택하거나, 독신 서약을 해서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기도 한다.
결혼을 했지만 이혼이나 사고로 혼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교회에서는 인정하지만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통해 묵상하고자 하는 바는 교회의 혼인법 보다는
예수님의 성경 해석에 주목하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실 때, 근원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가져왔다.
혼인에 관해서 하느님이 어떤 생각을 취하셨는지를 알려주고 계신다.
근본 취지라고 할까?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 19,4,5)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하느님 아버지 위주로 성경을 해석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 편에서 해석하신다.
하느님 말씀이 인간의 탐욕으로 오염되었을 때,
가장 고통받는 이들 편에서 그분은 맞서 말씀해 주신다.
당연히 그분은 글자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글자에 하느님의 원의를 다 닮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모세의 이혼장 논란’을 보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약자인 여성의 편에서 변호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해서 바라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가정의 사랑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