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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르 3,13-19_열두 제자를 뽑으심

마르코복음 3장 13절에서 19절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시는 중요한 장면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로 구성되는 자신의 공동체를 모으고 싶어하셨다. 이를 위해서 그분은 "열둘"을 뽑으시고, 도처에서 그분께로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게 된다.(3,7-12, 예수님의 활동 요약 비교) 이를 통하여 독자들은 그 열두 사람에 의해 기초가 형성되는 후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은 믿음을 갖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예수님의 새로운 영적 "가족"의 일원이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특정한 공동체를 만드시는 작업을 하셨고, 첫째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중심으로 예수님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 공동체의 회원 기준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었다.

 

본문을 자세하게 보면,

1. '산'이 나온다. 산은 기도하는 장소(6,46)로서, 사람들은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있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으로 하여 저지대에서 산으로 올라간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하느님께 가까이 있게 되는 이 장소로 당신이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데리고 가신다. 그들은 예수께서 당신 곁에 있게 하시고 파견하실 사람들로서 부르셨던 열두 제자들이다.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그 뽑힌 이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시고 그들을 하느님의 영역으로 데려가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후에 가장 가까운 세 제자들을 데리고 훨씬 더 멀리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변모하시고, 그들은 그분이 당신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된다(9,2-7)

 

2. "열둘"은 예수님의 의도에 따라 거룩한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을 대표한다. 열두 사람을 뽑으신 것은 예수님의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행동 특징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모아들이고 완성시키고자 하신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이 열둘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그들에 의해 세워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대표하는 것이 된다. 단순히 "제자들" 그 이상을 의미하는 "열둘"은 미래의 공동체가 시작되고 있다는 징표이다.

 

3. 14절을 보면, 이들을 임명한 목적이 나온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그분의 사명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느님과 친교 관계에 놓인 생활 공동체신앙 공동체운명 공동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산"으로 올라간 이유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이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계셨다.

 

4. 예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임무를 위하여 "열둘"을 뽑으신다. 그분은 그들을 파견해서, 자신의 임무에 참여하기를 바라신다. 구체적으로 '선포하는 행위와 마귀들을 내쫓는 일'을 통해서 이 의도가 드러난다.

 

5. 그리고 나서 복음사가는 이 사람들의 "이름"을 밝힌다. 마르코는 시몬을 그 명단 맨 앞에 두고 있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와 가까이 연결시키고 있다. 이 세 사람은 야이로의 딸을 일어나게 한 사건(5,37)과 예수님의 변모(9,2), 그리고 게세마니에서의 통고(14,33)와 같은 사건에서 특권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이외에도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예수님과 같은 죽음을 겪게 되는데, '폭풍우 속에 함께 있는 동반자'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6. 마지막으로 유다 이스카리웃이다. 그가 예수님에 의해 뽑힌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다. 교회조차도 열두 제자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악의 신비'의 표지 아래 서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여기에 단지 암시되어 있을 뿐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단락은 예수님에 의해 하느님 가까이에로, 그리고 하느님의 승리로 다가올 왕국의 빛에로 인도되는 공동체를 재확인하는 장면으로서 남아 있다.

 

 

질문 및 묵상

예수님은 이 "열둘"에서 시작해서 "인류전체"가 하느님 아버지 품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이 원대한 계획에 나도 협조해야 하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주님, 당신의 사명에 성실히 참여하게 이끄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