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창세 3,9-24
주 하느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를 내치시며,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
복음 마르 8,1-10
예수님께서는 사흘 동안이나 배를 곯은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빵과 물고기를 주셨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며,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 복음에서는 가엾은 군중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을 주셨다.
창세기의 인간 범죄 내용은 인간의 측면에서보면 신에 대한 인간의 자립, 독립처럼 느껴진다. 물론 인간의 잘못에 대한 벌을 의미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람이 응당 겪어야 하는 것들 중 일부다. 노동과 출산 그리고 죽음. 이것은 인간이 고도의 지성을 갖게 되면서 인식하고 느끼게 되는 필연이다. 다른 물질과 동식물과 달리 창조주로부터 인간은 독립해서 살게 되지만, 한계와 끝이 명확하다. 그러나 인간은 선과 악을 알아 하느님처럼 되었으니 이상은 현실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 계속 추구하게 된다. 가령, 개나 소나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 본능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내치셨지만, '가죽옷'을 입혀 보내면서 관심을 끈을 놓치지 않으신다. 나쁘게 말하면 온 세상을 다스리라고 했는데, 그 지성으로 온 세상을 파괴할지 모르기 때문이고, 좋게 말하면 사랑 때문이다. 물론 후자가 맞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을 보면 주로 이상하게 당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결정적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 사랑이 무엇인지 일부 인간들은 알게 되었다.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하느님께서는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보니, 오늘 복음에서처럼 가엾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부모로서 책임감을 느끼셨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분께서는 아마도 '지성'과 '가죽옷'으로 지상에서 서로 협동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셨지만, 악과 가난, 질병이 인간을 너무나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을 찾기에 기본적인 삶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소위 기본적인 사랑을 하기에는 어려운, 곧 만인의 투쟁의 장이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닫혔던 에덴동산의 문을 열어주시려고 당신 아드님을 파견하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사명을 부여하신다. 인간에게는 아무런 조건없이 말이다. '가죽옷'과 '빵'은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영성체송이 오늘 독서와 복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