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히브 12,18-19.21-24
저자는 히브리 신자에게 마치 천국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훈시를 하신다.
제1독서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무시무시하다. 모세조차도 몸을 떨었다고 하니, 나라면 오죽할까.
요즘은 인사철이다. 나도 내년에는 이동을 한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면 소위 '신참'이 된다. 건물 구조나 동네 지리를 몰라서 처음에는 길을 헤맨다. 사람들은 어떤가. 누가 누군지 새로 익혀야 한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이런 낯섦이 없을 것 같은데, 히브리서의 표현대로라면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죽고 나서 심판을 받을 때,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내가 지옥에 왔구나. 무얼 잘못했지? 정말 후회를 계속하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세상에 살 때, 하느님 말씀 잘 들을 걸 하며 바싹 엎드릴 것 같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중세에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한다. 지금은 지옥, 마귀 이런 이야기하면 아무런 감흥이 없고, 오히려 공격 당한다. 부정 탄다고 말이다. 지옥보다는 천국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회개를 이끌기 위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천국, 연옥, 지옥, 심판에 관해 균형 잡히게 설명해 주면 좋은 것 같다.
묵상의 요지는 이렇다. 제1독서가 묘사하는 것은 천국인데, 첫인상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사체험자 말하는 환상의 나라 하고는 조금 다르다. 임사체험은 심판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사심판, 공심판이 있다는 것. 자비와 정의가 공존한다는 것. 결론은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는 장면이다. 예전에는 나는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파견하실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늘 당신과 함께한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기에 제자들의 파견이 상상이 안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고 나서는 혼자서 무엇을 하셨을까? 최소 일주일에서 그 이상이 걸렸을 텐데.
나는 제자들이 이때부터 공적으로 성령과 함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나를 파견하시면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11절은 같을 것 같다.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코로나 19 상황에서 일부 개신교처럼 할 수도 없고, 결국은 '온택트'(Ontact)라 생각한다. 참고로 온택트는 온라인(Online)과 컨택트(Contact)의 합성어로 신조어다. Untact하고 다르다.
방법으로 온라인으로 신자 개개인에게 다가가고, 불특정 다수의 비신자에게도 비대면 문화 강좌, 교육처럼 실생활과 관련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기도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며 나를 단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