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부르신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된다.
이때 많은 세리와 죄인이 함께 한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지적한다.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종교적으로 부정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명언을 남기신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세리와 죄인과 어떻게 어울리셨을까?
그들은 예수님을 왜 따랐을까?
오히려 율법에 정통한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을까?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쪽은 비구원이었고, 다른 한쪽은 구원이 확실했는데,
실제로는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의 요점은 예수님과 함께하려고 했느냐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하려고 하느냐다.
예수님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느냐, 아니면 과거 형식에 구속되어 있는 것 둘 중 하나다.
두 쪽 다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한다.
세리와 죄인은 포기(회개)했지만
율법 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시샘하고 의심했다.
오늘 복음은 어떻게 보면, 레위나 세리나 죄인이나
내 뜻을 비우고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함을 말하는 것 같다.
이들이 버려야 하는 거 있을 것이고, 이들한테 필요한 게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셨을 것이다..
'하느님 사랑' 말이다.
최고의 처방.
그런데 율법 학자들은 그 처방을 늘 받고 있었던 터라,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묵상의 결론은
율법 학자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받은 사랑을 계속 이웃에게 돌려줘야 하며,
죄를 지으면, 하루 빨리 주님께 가서 고백하고
하느님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