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1
그때에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에 비길까?
위의 복음에서는 겨자씨와 누룩을 지칭하고 있다.
겨자씨와 누룩은 겉으로는 작고 볼품 없어서 눈여겨 볼 가치가 없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고
누룩은 화학 작용처럼, 촉매제 역할을 통해서 부피가 확장하고, 형질이 사람들이 취하기 좋게 변한다.
처음에는 겨자씨나 누룩은 사람들과 관계없는 것들이고
그 자체로는 사람들에게 유용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유용해지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 역시 그와 같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는 것은 실제 눈으로 보이지 않고,
소위 '영적인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다.
눈에 보였다면, 망가졌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인류가 너무나도 많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는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는데,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알 수 있으며,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지금과 당장 그리고 오늘에 취해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없어도 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풍요로움을 보고,
자연을 만드신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면,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어찌 그 진리를 믿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