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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혼자서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드리면서 ‘수난의 때’의 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셨던 모양이다.

 

오늘 독서 말씀인 코헬렛을 보면 “때”, “시기”에 관해서 연속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면서,

태어날 때, 죽을 때를 비롯해서 28번의 때를 언급합니다.

마치 하늘의 때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잘 나도 안 되고

하늘의 때가 맞으면 아무리 못 나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는 9절 말씀인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코헬렛의 말씀은 모든 일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제때에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창조질서의 위대함을 말씀하시며, 그 때를 의식하는 것마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인간은 하느님의 이러한 일을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코헬렛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시간 창조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이는 인간이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은 운명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간혹 우리는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하고 대들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물고기나 애완견으로 창조하신 게 아니라, 존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당신 사랑으로 당신과 똑같이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당신과 인격적으로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상황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아주 잘 드러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함께 이룩할 결정적인 구원의 때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계획과 때를 인간과 나누시려고 합니다. 신적 신비를 공유하면서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비록 그들이 십자가의 신비를 당장은 감당하지 못해도 사랑으로 그들을 신뢰하며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믿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리라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파트너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그렇게 여기셨다는 것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 또한 파트너로 여기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는 죄의 굴레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일으켜 세우시고, 마침내는 약속하신대로 우리를 불러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을 믿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의 길을 꾸준히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