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제목은 내 티스토리 이름(행복과 불행 사이)과 '딱' 어울린다. 티스토리 이름을 행복과 불행 사이로 정한 이유는 내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의 심리 상태를 반영했다. 때로는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고, 주로 그 사이에 있을 때도 있다. 이 중 그 사이에 있을 때가 단연 많다. 이를 '평범한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이에서 행복과 불행을 관조하고 저울질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서 이렇게 정했다.
또 다른 이유는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다. 행복은 무엇이고, 그 반대인 불행이 무엇일까하는 물음말이다. 내가 기쁘면 행복이고 내가 슬프면 불행이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도 있겠지만, 감정과 감각에 기반에 둔 행복과 불행은 지극히 '나' 중심적이다. '나'와 '너'와 '우리' 그리고 모든 존재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극단적인 예일 수 있지만, '히틀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감정과 감각에 기분 측면에 보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 행복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불행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궁극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것이 오늘 복음에 등장한다.
1. 가난한 사람들
2.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3. 지금 우는 사람들
4. 미움받는 사람들(예수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불행은 이 반대다.
이것이 참 행복인 이유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 행복의 근원에는 은총인 하느님 사랑과 신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의 삶을 당신의 삶으로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1. 가난하게 사셨고, 2. 광야에서 유혹을 당하기도 하셨고 3.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며, 4.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종교 지도자들과 일부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죽임을 당하셨다.
이렇게 본다면 참 행복은 인간의 찬란함 보다는 부족함에서 출발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교만이나 오만 보다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매개가 되어 하느님 찾음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가 하느님을 찾고 따르고 살면 그 자체로 행복하 거다. 아마도 참 행복의 출발선을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흔히 흙수저, 금수저라고 하는데, 참 행복과 불행 선언의 기준으로 보면 그 반대인 것이다. 마치 금수저일수록 참 행복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주변 상황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부족한 상태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에, 많이 가진 상태에서는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비워야겠다. 그러면 참 행복이 무엇인지 하느님께서 알려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계시 자체로 참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