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루카 복음 5장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행적이 있으시다.
1. 고기잡이 기적 -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
2.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3.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
4.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5. 단식 논쟁 -새것과 헌것(옷, 포도주의 비유)
이를 보면, 예수님과 종교 지도층이 점점 대립 양상으로 가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중풍 병자를 고칠 때부터 시작된 종교 지도층의 불신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지 않고 이후에도 점점 커가기만 한다.
왜 그러할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처럼 오해한다.
왜 그들은 오해 또는 오판을 했을까?
율법 조문이라는 문자에 갇혀서 다른 것을 못 보는 경우가 아닐까.
이러한 현상을 두고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셨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 또한 이런 잘못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오해하고 오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도 베드로처럼 말이다.
그러면 이러한 잘못을 바로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늘 새 옷처럼, 새 포도주처럼 새 바람을 나에게 불어주신다.
그것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마치 헌 옷을 새 옷처럼, 묵은 포도주를 새 포도주처럼 변화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성령의 은사로 예수님 말씀의 의도와 목적 그것이 가리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그분이 세우신 교회 안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행동(사랑)하는 것이다.
주님께 앞에 엎드려 용서를 청하고, 죄의 두려움 떨쳐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새롭게,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기쁘게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는 주님 말씀으로, 주님의 영으로, 주님의 성사로,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즉시 따랐다.
반면에 종교 지도층은 계속 의심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을 따르는 도구인 율법을 하느님보다 더 위에 놓았던 것이다. 그 결과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한 것이 되어 버린 '참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게 잘못된 것인지를 그들이 전혀 모른다는 게 이러한 결과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그들은 헌것(율법 조문을 예외 없이 맹목적으로 지키는 것 - 자비, 용서, 사랑, 기쁨, 평화가 제외된 율법)에만 매달렸고, 헌것으로 새것(주님)을 판단하는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나는 오늘 주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나는 오늘 주님이 맡기신 신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 주님과 신자들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성령께 기도드려야겠다.
제가 주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제가 그 뜻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도록
제가 함께할 수 있는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게
성령이시어, 저를 이끄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