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4,40ㄴ)
어제 한 라디오에서 문단열 전도사가 나왔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과거에 영어 강사로 유명했던 분이었다. 개신교 라디오가 아닌 일반 라디오에서 '전도사'라고 해서 다른 사람인가 했다. 거두절미하고 그가 작은 교회를 꾸렸는데, 신자수가 40명에서 늘지 않아서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도를 했더니, 이러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너는 40명 이름도 외우지 못하면서 무엇을 더 바라느냐!"
복음에서 비치는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실 때 가급적이면 병자나 죽은 이에게 다가가신다. 물론 원격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백인대장의 종). 오늘 복음에서는 시몬의 병든 장모에게 다가가시고, 병든 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신다.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게는 성령을 통해서 전 인류에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신다. 물론 예수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라도 모인 곳에는 함께 계신다.
포인트는 그분께서는 설교를 할 때는 대중을 향해서 말씀하셨지만, 치유할 때는 개개인에게 다가가셨다는 점이다. 간절한 이에게는 개인적으로 다가가셔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어루만져 주셨다. 오늘처럼 해가 질 무렵이어도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코로나 19로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면이 자유로웠을 때, 그 자체로도 감사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 감사하지 않으면 당연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코로나 19 상황을 맞아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처럼, 나는 신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가가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한편으로, 코로나 19 상황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시기에 1:1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전하고 할 수 있는 시기다. 예전에 하루에 한 명씩 안부를 묻자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실행에는 옮기지는 못했다. 예수님처럼 한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