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는 장엄한 대목이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을 보면, 회당 전례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바빌론 유배 후 장소(성전)라는 거룩함에서 시간(안식일)의 거룩함으로 전례 형태가 옮겨졌다고 한다. 현재 코로나 19로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례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될지 유다인의 강제적 전례적 변화가 갑자기 눈에 띈다. 옆 길로 세었는데 오늘 묵상할 주제는 위의 구절이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간단히는 '성령의 활동'이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신원을 고백할 때도 그러하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라는 어제 복음 말씀도 그러하고, 오늘 복음에서도 성령의 활동이 언급된다. 그러므로 성령이 하느님 뜻과 일을 가르는 핵심이라는 의미다. 사목을 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 하느님의 일인지 나의 욕심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거의 대부분은 내 생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사목적 아이디어는 신기하게도 묵상 중에 떠오른다. 그래도 그것이 정말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더구나 코로나19 시대는 인간 삶이 강제로 변하고 있기에 기존 사목 방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목이 새로운 복음화인지는 성령의 활동 여부에 달려있고 본다.
그러면 성령의 활동 여부를 하나하나 질문을 던져보며 바라보자.
내가 태어난 것은 성령이 작용한 것인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내가 자라난 것은 성령이 작용한 것인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내가 세례를 받은 것은 성령이 작용한 것인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
다른 질문으로
성령을 받아서 일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성령과 은총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성령을 받은 이와 자유의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성령 받음은 무엇으로 식별 가능한가?
성령 받음이란 필립보가 주님을 뵙고 나타나엘에게 주님을 전하고 나타나엘이 주님을 뵙는 것과 같은 것일까?
그러면 성령을 받았던 제자들은 왜 결정적인 순간(수난과 죽음)에 주님과 함께하지 못했는가?
그러면 성령강림 사건 때야 비로소 성령을 받은 것일까? 주님을 뵌 것은 진짜 성령을 받은 게 아닌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니, 성령의 활동 혹은 힘은 일시적, 한시적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마치 물고기가 물 밖에서는 살 수 없듯이, 성령 없이는 한시라도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성령이 아니시면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
**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
○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