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3쪽
아주 심기:
"저녁놀이 물들어 해는 지고
산속 절에서는 종이 울리네
모두모두 손잡고 집으로 가자."(22쪽)
"... 저녁에, 그것도 이국 마을에서 소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니 불현듯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주기:
저녁에, 그것도 홀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불현듯 폴란드 선교사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인생은 무엇일까?'
2. 24-74쪽
아주 심기: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31쪽)
물주기:
사치코가 지금은 상본의 의미를 모르지만, 나중에는 책 제목처럼 전쟁으로 몸소 그 삶을 스위스 설경처럼 아름답게 보여줄 것 같다. 나도 이처럼 살아야지.
3. 75-105쪽
<아주심기>
'신부님! 다시는 일본에 돌아오지 않는 게 좋아요.'(102쪽)
<물주기>
오노가 폴란드로 돌아가는 콜베 신부에게 한 말이다. 기적 소리 덕분에 신부는 듣지 못했다. 전쟁의 전조 혹은 징조를 말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일어날 어떤 비극적 전쟁 말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위대한 사랑이 싹트고, 사랑이 무언가를 해결할 것 같은 예상이 든다.
4. 106-134쪽
<아주 심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124쪽)
<물주기>
믿음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이 당연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슈헤이가 헌병에게 당하는 상황을 보니, 이 사랑이 실제 상황 안에서는 작동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폭력 앞에서 모욕과 조롱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믿음으로 감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5. 135-184쪽
<아주 심기>
" - 기도를 드린다고 했겠다? 모두들 들었지? 이 작자가 지금 백 명도 넘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불에 타 죽었는데도 기도를 드리고 있다잖아? 기도해서 될 일이라면 고생할 필요도 없겠지. 기도한다고 해도 여기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느님은 우릴 도와주지 않아!"(151-152쪽)
<물주기>
1월에 다녀갔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가 생각이 났다. 아래 사진처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이 계셨던 독방도 볼 수 있었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가서 그 광경을 보고 나니 정말로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처음 읽을 때 콜베 신부님하고 이름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연결될지 몰랐다.
6. 185-236 쪽
<아주 심기>
"- 그러나… 신은 저 가스실의 검은 연기를 능가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 검은 연길 능가하는 걸 준다고? 그게 뭐요?"
" 사랑… 의 의지입니다."(192쪽)
<물 주기>
인간의 죄는 인류 공동체를 해치고 인간과 세상을 타락시켰다. 그 가해자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함으로써 타락해졌고, 피해자는 가해자로 인해 하느님이 부여한 인간 존엄성을 훼손당했다. 인간 전체가 타락 혹은 비극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그 관계를 회복할 힘을 주신다. 그것이 '사랑'이다. 콜베 신부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고 그 처참한 현장에서 하느님 사랑을 선포하고 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처럼 말이다.
7. 237-255쪽
<아주 심기>
"남자는 그들의 무기력함을 경멸했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잃어버린 겁쟁이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라고 생각했다."(240쪽)
<물 주기>
올해 오비시에침을 방문하면서, 너무나 광활하기에 탈주하기가 쉬울 것 같다는 느낌 하나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저항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전에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 광기에 수많은 인간이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죄'의 무게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닫게 된다.
8. 256-307쪽
<아주 심기>
"슈헤이가 주머니에거 꺼낸 신문지 속에는 분홍색 만년필 두 자루가 들어있었다.
- 하나는 사치코 거, 또 하난 ...
슈헤이가 말했다.
- 그 사람에게 줄 선물이야."(273쪽)
<물 주기>
사치코는 슈헤이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하고 있었다. 슈헤이는 그 감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슈헤이는 그런 사치코에게 자기가 관심 있어하는 이에게 줄 선물이라고 사치코에게 서슴없이 말한다. 그에게 아무 감정 없이 동일한 선물을 주면서 말이다. 이때 사치코는 어떤 감정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어긋남은 소설 등장인물인 헨리크와 콜베 신부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곧 하느님은 콜베 신부를 통해서 헨리크에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는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콜베 신부님과 만남도 신선했지만, 작가가 연애 이야기를 하느님 사랑 이야기로 연결시키며 이끌고 있는 것에 감탄했다.
9. 308-336쪽
<아주 심기>
"헨리크는 그 사람에게 빵을 주었다. 남자는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인 채 중얼거렸다.
- 아, 믿을 수 없는 일이요.
헨리크가 베푼 사랑의 행위는 이뿐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336쪽)
<물 주기>
콜베 신부의 대속적 사랑이 헨리크를 변화시켰다. 가장 아름다운 기적의 순간이다.
10. 337-377쪽
<아주 심기>
"- 나도 이런 일본은 싫어. 내가 지키려고 하는 건 ... 아니 내가 전장에 나가서 지키려는 건 ... .
- 말해 봐, 그게 뭔지.
- 우리 어머니하고 ... 여동생, 그리고 그 사람을 지키려는 거야 ..."(345쪽)
<물 주기>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너 자신'이란 자기애가 아니라 가족을 뜻한다고 한다. 오하시는 가족과 대등하게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수님 말씀하신 그 사랑을 말이다. 나는 가족과 이웃을 얼마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11. 378-427쪽
<아주 심기>
"- 응, 뭐 그렇게까지 정색할 필욘 없어. 다만 경찰이 무슨 일이든 전부 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423쪽)
<물 주기>
경찰이 대놓고 민간인을 당당하게 사찰하는 시대였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우리 나라 또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민간인 사찰이 간첩을 잡기 위해서 이루어졌던 시대다. 하지만 오늘날이라고 해서 완전한 자유와 평등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하느님 나라는 언제 완성이 될지 멀게만 느껴진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전부 다 보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2. 428-444쪽
사진 올리기
13. 445-465쪽
<아주 심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세대의 사랑은 이제 이것으로 끝난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은 다른 세대가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464쪽)
<물 주기>
사랑의 주체과 대상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사라지지만, 사랑이 갖는 고유성은 영원한 것을 말하는 것 같다.
14. 466-495쪽
<아주 심기>
"... 이때 사치코는 세이키치를 위해서 성모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기쿠와, 슈헤이를 위해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몇 번이나 겹쳐 떠올렸다."(494쪽)
<물 주기>
기쿠 할머니, 콜베 신부 그 뒤를 이제 앞으로 사치코까지. 사랑이 내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그 숭고함에 잠시 묵념하게 만든다. 성모님 역시 아들 예수님을 위해 그 사랑을 보여주셨고, 당연히 예수님은 그 사랑의 절정이고. 사랑 충만한 오늘이다.
15. 496-518쪽
<아주 심기>
"... 그러나 나도 군인인 이상, 사치코와 그 이상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사치코, 그러니 좋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십시오."(510쪽)
<물 주기>
전쟁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전쟁이 갈라놓은 사랑. 슈헤이는 사실 사치코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일반적인 연인의 사랑이 아닌 목숨 바쳐야 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이를 바라보는 독자 입장인 나는 애가 탄다. 누군가에게는 위대한 사랑이지만, 관계자에게는 슬픈 일이다. 콜베 신부님의 대속적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위대하지만, 그와 관계된 이들에게는 슬픈 일인 것처럼 말이다.
16. 519-549쪽
<아주 심기>
"사랑하는 이여,
생각해 보아요, 저 나라를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즐거움
거기서 우리 한가롭게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534, 544쪽) - 보들레르, <여행의 권유>
<물 주기>
보들레르가 쓴 이 시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으로 보니, 내가 생각한 반전은 없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동양의 나라를 동경하며 같이 그곳에 여행을 떠나자는 것, 유토피아 같은 곳으로 말이다. 소설 속에서 이 시를 나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이 세상 너머에서는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이지만, 허락이 된다면 다른 세상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말이다.
17. 550-595쪽
<아무 심기>
"결국 저희는 이 어두운 운명의 파도를 피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세대였습니다. 정말 ... 괴로운 세대였습니다."
"... 어쩌면 교회도 지금의 저처럼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오. 뭐라고 답을 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560쪽)
<물 주기>
돌아보면 행복한 나날보다는 힘든 나날이 더 기억이 많다. 물론 전쟁 상황과는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면 오늘날 또한 위기의 연속이다. 이에 대해서 마땅한 답이나 해결 방안 또한 제자리 걸음처럼 느껴진다. 단지 지향 정도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괴로움을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살뿐이다.
18. 596-615쪽
<아무 심기>
"... 그녀는 아이들에게 전쟁 때는 밀감 하나도 귀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598쪽)
"하지만 사치코가 가장 슬픈 것은 츠네오와 하루에가 언제부턴가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것이다."(602쪽)
"- 사랑한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거와 달라."(603쪽)
<물 주기>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체험이 완전히 경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그 흔한 예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희화하는 하는 시대다. 과거를 무시하고 현재와 현실만을 중시하는 시대다. 신앙 또한 이 시류에 예외가 아니다. 고리타분한 영역을 넘어서 신을 부정하는 세대로 와 버렸다. 신 또한 무시받고 있는 시대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무시하다가 아주 망해 버렸는데, 오늘날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다. 사랑은 오직 하느님한테서만 배울 수 있는 멍에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인간, 사랑을 배우지 않은 사람, 사랑하지 않는 공동체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또다시 그 불행한 역사를 재현할 뿐이다. 사랑은 하느님한테서 오는 것인데, 그것 없이 살려고 하니, 인생은 어쩌면 계속해서 '전쟁'과 같은 불행의 연속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