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이다. 티 없이 깨끗하다는 의미가 사실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만나면서, '티 없이 깨끗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마음이 세속 정신으로부터 단절되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것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티 없이 깨끗하면 하느님을 뵐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성자를 품고 키우고 바칠 수 있었구나.
고로 나도 이 준비를 통해 세속 정신을 끊고 티 없으신 성모님을 닮아 주님을 더 사랑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2일, 양 진영
준주성범 제2장 11장 1항이 마음에 들었다.
천국, 위안, 잔치, 즐기는 것, 생명의 방, 기적 등등을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십자가, 곤란, 재를 지키는 것, 고통, 수난의 잔, 십자가의 모욕 등등을 원하는 이들은 적다고 한다.
나는 어느 쪽의 사람이었는가 반성하게 된다. 그분을 위하여 고통을 참거나 수난의 잔을 마시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어쩌면 기회주의자처럼 주님을 섬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신학교 가사처럼 지금도 "진세를 버리고 이 몸마저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지.
예수님 말씀에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야겠다.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3일, 결단
준주성범 제3권 3항
"많은 이가 관상기도를 사모하지만, 그에 필요한 것은 아니하려 드나이다."
관상기도를 다른 말로 대체하면 영적 진보일 것 같다.
영적 진보를 위해 먼저 방해되는 것을 끊어야 한다. 표적과 감각물. 곧 세속 정신이다.
이는 자기 극복에 마음을 쓰는 것으로 비유된다.
해로운 것을 멀리하기 위해서 극기하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세상 사물에 대한 집착도 줄여나가야 한다.
대신 내적 행동에 더 많은 시간과 집중을 해야 한다.
내가 이 글을 이해한 바로는 영적 진보를 위해서는 극기하며 극기로 통해 얻어지는 시간을 하느님과 관련된 것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1) 끊기 2) 영신적 행동에 집중하기
오늘은 세상적인 가치를 거슬러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날이다. 세상 것과 그리스도 둘 을 동시에 따르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끊어야 할까.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4일, 권력과 명예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나는 권력과 명예는 그다지 쫓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반대급부로 참된 신심에서처럼 사는 것도 아니다.
참된 신심(196-200항)에서는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이 날마다 행하는 태도들을 나열하고 있다.
1)_그들은 거룩한 어머니를 모시고 그 어머니의 모범을 따라 속세의 잡된 일을 멀리하는 은둔을 좋아하고 내적이며 기도에 전념한다.
2)_그들은 거룩하신 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기들의 어머니로서 여왕으로서 진정으로 공경한다.
3)_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자께서 세상에서 공생활 전 30년 동안 어머니 마리아에게 완전히 순종하여 성부께 영광을 돌려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본받아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에게 순종한다.
4)_그들은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의 인자와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5)_빛의 자녀들은 마리아의 길을 따르고 덕을 본받는다.
성부의 뜻에 순종하신 성자, 그리고 성모.
권력과 명예가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위의 다섯 가지 성모의 길을 따르도록 해야겠다. 기도하고 어머니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덕을 본받도록 노력해야겠다.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5일, 우상화된 육욕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20)
나의 몸은 ‘성령의 성전’이므로, 몸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하지만 <참된 신심>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연약하고 불안정하기에 은총과 선물들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런데 교활한 악마들의 경우는 그동안 잘 몰랐거나 간과했던 측면이 있었다. 이를 이길 방법은 ‘겸손’임을 말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가 인성논란으로 대중에게서 질타를 받고 몰락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자만심은 아무리 뛰어난 성덕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악마의 먹잇감이 된다.
물론 내가 그만큼 뛰어난 성덕을 지니지 않았기에 악마의 공격을 잘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은촌의 귀중한 보화’를 내가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그 즉시 성모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는 봉헌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다.
“마리아께서는 당신께 완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자에게 이러한 기적을 행하신다.”(여기서 이러한 기적은 부패한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6일, 지성주의
“또 아를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참된 신심> 74항을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말해온 것을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을 말할 수 있다.”는 전제를 루도비코 성인은 말씀하신다.
복음말씀을 이와 같은 관점으로 상대적으로 보면, 성모님에 관해서도 철부지와 그리스도께서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성모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루도비코 성인은 <참된 신심> 77항에서 한탄을 하신다. “아, 내가 왜 이다지도 필요없는 말을 하고 있을까? 왜 내가 이다지도 명백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증명하려고 하는가?”
지성주의에 물든 사람은 예수님은 물론이지만, 마리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힘들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리아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는 것이 클 것이다.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게 어쩌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유다인이 예수님을 고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신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사람이면서 신일 수가 있는가? 이와 비슷하게, 마리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봉헌하는 것은 우상숭배다. 오직 그리스도만 믿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철부지들”처럼 그리스도의 종, 마리아의 종이 된 것에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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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집단적 인간성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참된신심>에서는 에사우를 세속적인 사람들의 상징으로, 야곱을 하느님의 자녀들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세속적인 사람들이란, 방탕, 탐욕, 과신, 무지, 완고함, 무례함, 질투, 학대 등을 저지르는 이들을 말하며, 피정이나 내적 및 영신적 신심을 좋아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들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자녀이며 새 인간은 <준주성범>에서 보면, 하느님을 찬송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그 일에 열심이며, 덕행을 닦고, 과오를 멀리하고, 하루를 유익하게 보내며, 자신을 잘 성찰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를 통해서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새 인간’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성모님께 그러한 은총을 중재해 달라고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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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 쾌락
“자기들의 행실을 고치려는 노력은 없어도, 마리아께 경의를 표하여 어떤 기도문을 형식적으로 외우거나 중얼거리면 마리아의 총애를 얻었고 마리아의 종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참된신심 188항)
쾌락이라는 주제와는 다르지만, 위의 구절을 택한 것은 마리아사제운동을 하면서 내가 범한 치명적인 실수를 지적하고 있어서 정했다. 내가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를 하는 이유는 여러 사정이 있지만, 그중에서 마리아사제운동을 하면서 ‘변화’하는 것에 있어서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행실을 고치려는 노력”이 없이는, 지속발전하기가 어렵다. 퇴보하게 된다. 어쩌면 내면의 기쁨이 아닌, 외면의 즐거움을 추구했기에(쾌락) 이와 같은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성모님께서는 나를 이끌어주고 계신다. 내가 더 그에 맞게 응답하는 것만 남았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는 2018년에 본당 셀 기도회장님한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이제서야 하게 되었는데, 마리아사제운동을 하고 있기에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내용은 나에게 있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직언’이다. 그리고 이 준비를 하는 이유에 대한 답 중 하나이기도 하다.
루도비코 성인에게, 성모님에게,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린다.
행실을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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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일, 거짓과 위선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콜로 3,10)
세례성사로 새 인간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 그러면 참지식에 이르게 되는 것. 33일간의 준비가 그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거짓과 위선을 벗어버리고, 세속정신,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고. 분노, 격분, 악의, 중상, 수치스러운 말을 버리고 하느님을 점점 닮아가야 한다는 콜로새서의 말씀은 끊임없는 회개를 구체적인 예로 들면서 나에게 전하고 있다.
이 과정이 정화의 과정이며,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을 닮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께 대한 봉헌이기도 하고.
그런데 제9일에는 <참된신심>이 없다. 이 점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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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일, 자유에 대한 무절제한 갈망
창세 3,1-15이 마음에 와 닿았다.
뱀이 여자에게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며 거짓을 이야기한다. ‘죽지 않는다’를 넘어서 ‘결코’라는 부사까지 넣는다. 뱀은 진리를 왜곡하며, 여자에게 헛된 욕망을 심어준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속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마치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도 신 불로장생을 꿈꾸며, 진시황의 후예(?)들이 있다고 들었다. 예를 들면, ’냉동 인간’이다. 냉동을 시킨다음, 후대 기술이 발전하면 해동해서 사는 이들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치료가 아닌 죽지 않기 위해 기술적으로 연구하고 막대한 투자를 한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이걸 보면, 마치 신 바빌론 탑 쌓기처럼 인간의 욕망은 성경이 저술된 시점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성경은 이 점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있다. 그 근본 배경에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데에 있다고 본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뱀의 말을 들은 남자와 여자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 뱀(악마)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죄를 지어 부끄러워졌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이 선이고 뱀이 악이라는 것을 죄를 짓고 알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왜 사람들의 양심이 작동이 안 되는 것일까? 죄를 지으면 부끄럽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더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 답은 죄의 노예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진리, 곧 성령으로, 세례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십자가로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며,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참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결국 하느님과 화해하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 없이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죄의 유혹과 악에서 구해달라고 성모님께 전구하며 묵상을 마친다.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11일,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대학생 때 암송했던 구절이다. 친숙해서 이 구절을 선택했다.
1)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난 뒤에 찾는 것, 곧 실천을 하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
2)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먹는 것, 마실 것, 입을 것이다. 곧 음식과 옷을 말한다.
이것들은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이다.
‘입을 것’은 직접으로는 의류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상황으로 적용해 보면(옷이 없는 시대는 아니므로) 인간 관계를 위한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본다면 음식도 단순히 열량을 채우는 것을 넘어 욕구와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물질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을 오히려 반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구하면 원초적인 욕구에서 해방되어 음식과 옷에서부터 절제하며 삶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런 것들을 차지해 놓고, 그러면 1)번의 질문에 대한 그 답은 무엇일까?
이 답을 올바로 아는 것에부터 시작해야 ‘회복탄성력’처럼, 죄에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배우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게 필요하다.
3) 그리고 이 구절에서 생각할 점은 ‘먼저’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목표에 대한 성취와 성공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목표 설정을 놓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이며, ‘그냥’일 수 있고, 일상의 루틴일 수도 있고, 전혀 지루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먼저’라는 말 그대로 놓고 보면, 다른 일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인데, 밥 먹기 전에 기도가 쉬운 예일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호경. 잘 때도 성호경. 성호경을 긋는 것도 간단한 실천이 되겠다. 어쩌면 이미 ‘먼저’ 살고 있어서 잘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일보다 더 ‘먼저’ 하느님을 찾으면, 그 모든 것을 그분께서 안배해 주시기에 100배, 60배 , 30배의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닐까.
제1장 첫째 시기 12일 : 세속 정신을 끊음
제12일, 생의 마지막 것들
“사랑하는 이여, 네가 무엇이든지 할 만한 것이 있으면 하라. 지금 하라.”
준주성범 제1권 23장 8항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구호인 ‘Just do it’이 연상되는 위의 구절은 자기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하라’처럼 들렸다. 봉헌을 위한 이 준비도 ‘지금 하라’를 실천하기 위한 한 ‘몸무림’일 수 있다.
마태오 복음의 ‘깨어 있어라’는 말씀, 루카 복음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는 생의 마지막 것들의 주제와 연결시켜 묵상해 보니, 훨씬 더 와 닿는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이 재림할 때도 그 예전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인이 언제 오든 준비되어 있는 충실하고 성실한 종의 모습. 서로 대비가 된다. 당연히 나는 루카 복음에 나오는 종을 닮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노아 때 사람의 모습으로도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오늘 내가 선택한 구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네가 무엇이든 할 만한 것이 있으며 하라. 지금 하라.”(세속 정신 끊고) 당장 하라.
제2장 둘째 시기 제1주 : 자기 자신을 알기
제1일, 자신에 대한 인식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마 8,13)
제1일차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인 줄 알았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등등. 그런데 독서들을 읽어보니,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창세기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이 만드신 ‘나’이며, 그런 ‘나’(인간)는 번성과 다스림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사제로서는 복음 전해서 세례를 주고, 신자들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로마서에는 성령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누군이지를 말하는 것 같다. 죄로 죽은 내가 성령으로 새 생명 얻은 이며, 그런 나는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된다. 또한 하느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이다.
준주성범에서 ‘나’는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 찬미 드리며 순명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요즘 묵상 거리는 ‘고난’이다. 로마서 8장 17정을 보면,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영광을 누리려면’의 현재 진행형은 예수님과 함께하려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지만,) 으로 이해된다.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게 영광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 순간 순간 함께하는 것에서 시작이 될 것 같다. 기도하는 목적 중 하나이다. 그런데 ‘고난’이 필수로 들어온다. 고대에는 일부러 편태라고 해서 이를 위해서 고행을 했다. 보속이라는 의미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편태를 금한다. 편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고난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재를 지키는 것, 이웃 사랑 실천, 원수 사랑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고난에 동참하면 좋다. 하지만 고난이 찾아오는 것들에 대해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면 그 ‘고난’은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은총의 통로’가 된다. 또한 이때 고난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 멍에’, ’가벼운 짐’이 된다. 그리고 고난은 진리로 이끌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고난에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 지금 주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한다.
제2일,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로마 7,25)
로마서 7장인 이 부분은 내 서품성구와 관련된 본문이다. 이렇게 만나게 될 때면 첫 만남처럼 설레기도 하고 우수에 빠지기도 한다. 서품 후 13년이 지났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성숙해졌는지에 관한 성찰을 해 본다. 마침 로마서 본문이 ‘죄’에 관한 파트에 배정이 되어 있어, 나를 되돌아보는데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고백한다. 죄의 수렁에서 구해준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말이다. 바오로 사도조차 이런 고백을 하는데(고백록의 아우구스티노도 그렇고), 하물며 나는 어떠할까.
참된 신심에서도 그렇고 준주성범에서도 그렇고, 일단 하찮은 나를 인정하는 게 선수다. 그렇다고 죄의 종살이에서 내 의지로 빠져나올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능함을 오늘 독서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치열하게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한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 그러지 않으면 죄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실천 사항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님께 청원하기
수호천사께 기도하기
제3일, 내적 죽음
요약
내적 죽음으로 내 안의 악과 죄가 소멸되고, 새 인간(하느님의 모상)을 자리가 마련된다.
내적 죽음은 새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
그렇다면 내적 죽음은 성경에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요한복음 :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처럼 밀알의 비유로 열매를 맺기 위한 희생으로 말하는 것 같다. 또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고 하면서 목숨보다 하느님께 대한 순명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로마서 :
로마서에서는 세례성사로 죽음, 곧 그리스도와 함께 묻힘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된신심 :
참된신심에서는 내적 죽음을 1코린 7장 29~31절을 참조해서 능력, 관능을 단념하고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밀알의 비유를 언급하며 열매 맺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준주성범 :
여기서는 내적 죽음을 성부를 위한 시련과 역경을 당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내적 죽음은 보속, 정화, 단련, 견책 등의 기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천사항
하느님을 위해서 내가 끊어할 것이 무엇이며, 목숨 바쳐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실천해야겠다.
제4일, 이기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요약
- 마태 25,31-46 :
최후의 심판,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영원한 벌을 받는 곳,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 - 십자가의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 43항
우리 안의 것들이 타락했다면 연쇄적으로 은총 역시도 아주 더렵혀지고, 의지에서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을 그로부터 보호하신다. - 준주성범 제3권 27장 1-3항
주님께 완전히 맡겨야 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제일 너를 방해한다.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기심과 흔적과 그 정도를 살펴보고 그러한 악한 습성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실천사항
제5일, 교만
참된 신심 2항
“마리아는 일생 동안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성령과 교회는 그분을 “Alma Mater - 숨은 은밀한 어머니”라고 부른다.
성모님에게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겸손이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다.
성모님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가령, 하느님한테서 특은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을 낮추거나 비우는 생활을 하셨다. 세례자 요한처럼 그분이 커지셔야 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처럼, 성모님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사셨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고 그분께 다시 돌려드릴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며 그 안에서 기뻐한다.”(128쪽)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그대로 살려고 하는지?
제6일, 나태
“하느님께서는 우리 이웃의 구원까지도 우리에게 맡기셨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너무나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흔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말을 듣고는 한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사용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재화의 소유는 원천적으로는 하느님에게 있다. 인간이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완전한 소유를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논지에서 본다면, 구원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혼자 구원되라고 나를 창조하신 게 아니다. 창조 목적은 나 자신과 이웃과 함께 구원받는 것이다. 곧 구원에 있어서 선교 사명이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태는 커다란 죄악이 된다. 소작농이 일을 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탈렌트의 비유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실천사항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성실히 해 나가도록 살아야겠다.
제7일, 애덕이 없음
준주성범 제1권 15장 1항
“사랑이 없이 겉으로 하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고, 애덕으로써 하는 일은 아무리 작고 천한 일이라도 모두가 유익하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일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지 살피시지 않고 얼마만한 열정과 사랑으로 하였는지를 헤아리시는 까닭이다.”
신학교의 어느 교수 신부님 말씀이 영성강화 시간에 한 말씀이 떠오른다. 당신이 교회를 위해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느님께서는 공부 많이 한 것보다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지를 보신다는 것에 그동안 한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가 하는 소회를 말씀해 주신 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이 화두를 지니고 내린 결론은 열정과 사랑으로 교회를 공부를 하고 그 공부한 것을 후학들에게 나눠주었다면 하느님께서도 기쁘게 받으시지 않을까. 준주성범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일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유무다. 애덕의 유무다. 물론 그렇다고 조금만 하는 것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최근 어린이 청소년 가정 체나콜로 피정을 함께 준비하면서, 나는 과연 그 안에 사랑이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 물론 겉으로만 일을 하지 않았지만, ‘열정과 사랑’이 동반했는지. 진정한. 사랑으로 함께하고 있는지.
실천사항
앞으로 일을 할 때, 사랑을 담아 준비하자.
제3장 둘째 시기 제2주 : 성모님을 알고 사랑하기
제1일,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와 마리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갈라 4)
세례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자와 함께 집전 사제를 통해 성령을 나에게 부어주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파견하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뿐 아니라 성모님은 성자를 양육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순종하며 지내셨다. 첫 번째 기적 때 성모님은 함께하셨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보고’이시다.(참된 신심 16-24항 참조)
이처럼 삼위의 관계가 마리아와 관계되듯이, 나 또한 성모님과의 관계 안에서 삼위와의 관계가 서로 연결된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참된신심 21항 끝에 보면, “이는 아무리 박학한 학자, 아무리 신심 깊은 신자라 할지라도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은총의 한 신비인 것이다.”라고 나온다. 나는 박학한 학자, 신심 깊은 신자가 아니다. 고로 나는 오늘 말씀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오묘한 관계가 성모 신심을 이해하는 기초라 생각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왜 성모님을 통해서,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로 갈 수 없는지에 대한 오늘 내용이 답이 된다는 뜻이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성모 신심을 더 키우고, 성모 신심에 관해 더 공부하자.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주님, 제가 어머니를 닮아 어머니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는 도구되게 하소서.
제2일, 성령의 정배이신 마리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 마리아는 성령의 이 모든 선물과 은총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또 원하는 방법대로 나누어주신다.”(참된 신심 25항)
레지오 선서문에 나오는 문구다. 레지오 선서문에 관한 주석을 보면 성령에 대한 신심이 부족한 이유로 성모 신심의 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성령과 성모님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성모 신심 계보에 관한 조각이 맞추어지는 듯 하다. 성 루도비코의 참된 신심에 기반해서 여러 성모 신심 단체가 그 이론적 토대를 이루는듯 하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마리아께서는 성령과 더불어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으며, 그리고 세상 끝날에 가장 위대한 성인들을 낳을실 것이다. 세상 끝날에 나타나게 될 위대한 성인들을 출산하고 교육하는 일은 마리아의 몫이다. 왜냐하면 성령과 함께 놀랍고 뛰어난 것들을 생산할 수 있는 분은 유일하고 오묘하신 동정 마리아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35항)
성인들을 양육하시는 분은 마리아이시다. 모든 성인은 성모님을 사랑하셨다. 이 또한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는 것 같다. 아직 성인은 아니시지만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 또한 성모님으로 양육되셨고, 블루북에서도 성모님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성모님 메시지 읽기와 레지오 교본 읽기를 해야겠다.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성령이시여, 제가 성실하게 생활 수 있도록 함께하소서.
제3일,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그 신비체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복음)
“은총은 본성을 완성하고 하늘의 영광은 은총을 완성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것과 다름없이 하늘에서도 여전히 마리아의 아들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어머니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해서 모든 자녀들 가운데서 완전한 아들로서의 존경과 순종을 하늘에서도 계속 드리고 계실 것이다.”(27항)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마리아 -> 예수 그리스도 -> 성부. 성모님을 상경하고 성모님께 전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타당한 이유가 오늘 글에 나와 있다. 성모님이 왜 구원에 꼭 필요한 분이신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스도를 낳으신 성모님의 믿음과 순종, 겸손이 성부 하느님을 감동시킨듯 하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왜 성모님인가 하는 점을 느꼈다. 왜 성모님이 아니면 안 되는가.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성모님께 의탁하고 봉헌하며 그에 따라 실천해야겠다.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성모님, 오늘도 당신께 봉헌합니다. 저를 받아주소서.
제4일, 은총의 중개자이신 마리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우리가 중개를 통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겸손을 뜻하는 것이므로 완전하다 할 수 있다.”(83항)
“그러므로 우리가 이 중개자를 무시하고 직접 지존하신 성 삼위의 어좌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분명 겸손의 부족이며, 지존하시고 엄위하신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 부족한 것이다.”
하느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하느님 뜻에 맞게 전달되는 측면에서 보자면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달해서 가는 게 올바른 길이라 믿는다. 비유하자면 내가 대통령을 대면할 수 있고, 설령 임금이라도 대면할 수 있다. 다만 압도당할 수 있고, 말이 안 통할 수 있고, 무의미할 수 있다. 나에게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개자는 좀 더 소통을 원활하게 도와줄 수 있다. 위에서는 겸손의 차원을 언급했지만 나는 지혜의 차원에서도 마리아께 부탁하는 게 맞다고 본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이 제일 먼저 혼주의 어려움을 알아차리셨다. 그리고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다. 또한 엘리사벳 방문 때 태 안에 있던 세례자 요한을 성화시킬 때도 성모님의 중개가 있었다. 그때와 같이 성모님은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신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묵상 전 기도처럼, 성모님을 더욱 더 잘 알고 더욱 사랑하도록 성모님께 전구하자.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당신으로 채워주시고 제 안에 천상 사랑의 불을 붙여주소서.
제5일, 사도의 모후이신 마리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책임을 이행치 않으면서 마리아께 대한 감상적인 열심만을 지닌 사람은 아직 마리아께 대한 참된 사랑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순수한 신앙이라는 것은 감각적 위안이나 초자연적 은혜에 집착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의 동기에서 그대의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사랑에 의해 고무된 생활 속의 신앙이며, 거센 풍랑과 심한 불안 속에서도 안전하고 확고하게 머무를 수 있는 바위같이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앙이다.” “예민한 신앙”, “용감무쌍한 신앙”, “휘황찬란한 횃불”, “신비로운 생명”, “지혜의 기묘한 보화” 등등(참된 신심 214항)
올림픽 탁구 경기를 보면서, 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 경기중 양궁 선수들의 심박수가 낮은 것. 육체와 정신이 흔들리지 않는 태도라 여겨진다. 그런데 신앙의 측면에서 성모님께 합당하면 할수록 ‘순수한 신앙’을 가진다고 한다. 이 순수한 신앙이 나는 운동 선수들이 보여주는 그 모습으로 비춰진다. 닻처럼, 성모님과 함께라면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신앙 위에서 복음을 더 굳건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성모님께 대한 감성적인 열심만을 지닌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열심부터라도 청해야겠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33일 기도를 꾸준히 완주하기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은총의 중재이신 성모님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청하자.
제6일, 묵시록의 여인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그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인류가 마리아에게 너무 지나치게, 너무 강하게, 또 너무 분별없이 집착하여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하느님께서 염려하셨기 때문이다.”(참된 신심 49항)
성모 신심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 조심해야 할 부분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삼위일체도 그렇지만, 하느님과 마리아의 관계 또한 신비다. 마리아만 놓고는 이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마리아만 놓고 생각하게 되면, 그분을 여신으로 생각할 정도로 위험성이 있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참된 신심 책을 깊게 읽기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성 루도비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제7일, 마리아 공경의 필요성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마리아의 왕국도 사람들 안에, 즉 인간의 영혼 안에 있다.(참된 신심 38항)
모후이신 마리아, 내 영혼 안에 성모님을 모셔서 성모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천주의 모친(431년 에페소 공의회), 평생동정(431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1854년), 성모승천(1950년). 이처럼 영광스러운 특전과 은총을 입으신 성모님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성모님께 마땅한 공경을 드리기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성령이시여, 마리아를 공경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제4장 둘째 시기 제3주 :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기
제1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그러므로 저는 제 천함을 자백하옵고 당신의 착하심에 승복하오며, 그 착하신 마음을 찬미하옵고 그 지극한 사랑을 감사하나이다.”(준주성범 4권 2장 1항)
그리스도 찬가와 그리스도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저자의 자기고백. 나 또한 그분을 이처럼 고백하고 싶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하다고 여긴 마음에서 벗어나 나를 낮추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저를 당신 대전에 전혀 겸손되이 생각하고 당신의 무한한 인자를 제 위에 들어 높이는 그 생각 외에, 더 낫고 더 유익한 생각이 어디 있으리이까?” 나의 비천함을 생각하고 당신 대전에 나를 낮추기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오 주님, 저로 하여금 주님을 알게 하소서.”
참고
“‘행실이 나쁜 여자’ 막달라 마리아”(203쪽)는 잘못된 내용이다.
“서방교회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대 그레고리오, 590~604년) 이후 일부 그리스도교 전통에 의해 마리아 막달레나를 루카복음 7장 36-50절의 죄 많은 여자와, 그리고 라자로와 마르타의 누이 마리아와 동일시했다.
이러한 시각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죄 많은 여인으로 보게 했고,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라는 평을 받게 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을 통해 7월 22일 마리아 막달레나 만을 기리는 기념일을 유지하고 미사와 성무일도 등 내용을 개정함으로써 고유 인물로 규정했다.”
([가톨릭신문, 2016년 7월 24일, 이주연 기자])
제2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루카 23장)
“네가 나의 제자가 되려거든 너 자신을 네 모든 정과 더불어 나에게 바쳐라.”(준주성범 제4권 8장 2항)
온전한 봉헌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봉헌.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너를 내게 바치고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라.”(2항)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5. 묵주기도 : “나의 구원을 위해 엄청난 고통을 인내하시며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이러한 예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길 청한다.”
제3일,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1코린 11,27)
“266. (영성체 할 때) 첫째, 하느님 앞에서 깊이 그대를 낮추어라!
둘째, 완전히 타락한 그대 자신과 그대의 눈에 훌륭하게 보이는 모든 자애심을 버려라.
셋째, “어머니, 저와 저의 모든 것이 오로지 당신의 것입니다.” 하며 그대의 봉헌을 새롭게 하라.
넷째, 예수님의 영광에 맞지 않는 그대의 더럽혀지고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그대에게 오시기에는 부당하므로 예수님께 합당하게 되도록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빌려주고 도와주시라고 마리아께 간청하여라.”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성체를 모시고 별감흥없이 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느님 앞에 나를 낮추고, 성모님께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내가 주님을 모시는데,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주님, 제가 즐겨 당신과 더불어 잇고자 하오니, 은혜로이 저와 더불어 머물러 계시옵소서. 제 마음이 당신과 결합되는 것이 저의 모든 원의옵니다.”(준주성범 제4권 13장 3항)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오, 마리아님, 당신을 저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오니, 당신의 마음을 제게 주소서!”와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쓸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를 세 번 외우기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님, 제가 비록 당신을 모시기에 ‘초라하고 부당(불결)’하오나, 마리아의 전구로 받아주소서.
제4일, 모든 신심의 궁극 목적이신 그리스도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신심의 궁극 목적임에 틀림없다.”(참된 신심, 61항)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성모 신심은 내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비추어준다. 성모님께 다가갈수록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더 커진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그리스도께 대한 막연한 사랑이 성모님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대한 구체적인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 같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체나콜로를 열심히 하기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주님, 체나콜로 기도를 자주할 수 있는 은총을 베푸소서.
제5일, 세례성사의 갱신인 그리스도께의 봉헌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왜나하면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른 사람, 즉 대부 대모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고 그래서 대리인에 의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나 이 완전한 봉헌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또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126항)
‘자발적’ ‘마리아의 손을 통해’ 이 두 단어가 이 신심이 지향하는 바와 의도하는 바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유아세례 이후 느슨해진 신앙생활을 ‘새로고침’하게 해 주는 역할.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주님께서 나를 구해 주셨다. 당신의 피로. 그래서 세례를 통해 당신께 나를 봉헌하였다. 하느님을 섬기기로. 세례 때의 약속. 물론 대부님과 부모님이 대신했지만. 그 약속은 유효하다. 그런데 나는 이 세례 때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가? 마귀(죄)과 마귀(죄)의 행실과 유혹을 끊는 것. <참된 신심>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모 마리아를 통해 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하며, 이 약속을 갱신하고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성모님의 도움과 보호를 청한다. 그분의 지도를 받는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세례 서약을 갱신하며(마귀와 마귀의 행실과 유혹을 끊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주님, 주권자로 삼아 자신을 사랑의 종으로서 완전히 바칠 것을 성모님께 대한 봉헌 통해 실천한다.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성모님, 제가 세례 때의 약속을 언제 어디서나 늘 충실히 지킬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고 성령께 전구하여 주소서.
제6일,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화
“만일 그대가 이 신심에 충실함으로써 생명의 나무인 마리아가 우리 영혼 안에서 잘 가꾸어지면, 마리아는 제때에 훌륭한 열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실 것이다.”(참된신심 218항)
“그러나 녹아서 액체가 된 것만이 주형에 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즉 쇠가 불에 녹아 액체가 되는 것처럼, 마리아 안에서 새로운 아담이 형성되려면 그대 안에서 낡은 아담을 녹여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참된신심 221항)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실천을 하고. 이는 제대로 이해했을 때 시행착오를 격지 않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성모님을 통해서는 이게 가능하다는 게 이 신심의 주장 같다. 단 조건은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되기 보다는 원래로 돌아가기가 일쑤다. 그 원인으로 루도비코 성인은 성모님을 건너뛰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도자 없이 혼자서 무엇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 들린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정상에 오를 수는 없다. 그건 분명 한계가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혼자서 그 큰 무대에 설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사람의 영적 지도를 받고, 훈련을 받을 수는 없다. 이것을 대신 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이 나는 성모님이라고 생각한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성모님을 통해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자.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주님, 제 안에 ‘낡은 아담’을 버리고 ‘새 하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과 지혜, 의지를 주셔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소서.
제7일,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1.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그런데 모든 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치려는 신심으로, 바꾸어 말하면 세례 때에 발한 서약과 맹세를 갱신하는 것이다.”(참된 신심 120)
“… 이 신심으로는 우리의 내적 재산과 우리가 매일매일 실천하는 선행으로 얻는 보속을 분배하고 처분할 권리까지도 마리아에게 위탁하고 봉헌하는 것이 된다.”
마리아께 대한 온전한, 완전한 봉헌. 교회의 어머니께 대한 맡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위층방에서 성령강림을 기다릴 때, 성모님은 함께 계셨다. 어머니가 아닌, 성령께 청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정배인 마리아의 전구로 성령을 부르는 게 훨씬 더 강력하다. 이게 맞다. 교회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사도들과 성인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 이렇게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고, 성령을 통해 아버지께, 삼위일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게 맞다.
2. 묵상 중에 느낀 내적인 움직이나 깨달은 점
“오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저는 주님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옵니다.”
3. 2번의 내용에 따라 실천할 점
“우리가 마리아께 바쳐야 하는 것은 첫째, 우리의 몸과 몸의 모든 기능
둘째, 우리의 영혼과 영혼의 모든 능력
셋째, 우리의 외적인 재화, 즉 현재와 미래에 갖게 될 모든 물건 및 재산
넷째, 우리의 내적인 영적인 재화,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든 공로와 덕행과 선행이다.”(참된 신심 121항)
4. 실천할 수 있는 은총 청하기
아버지 뜻이 이루어 지소서.
제5장 봉헌식을 위한 안내와 봉헌 예절
제6장 봉헌식 이후의 삶 - 봉헌의 생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