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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부활 제6주간 목요일

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고 - "조금 있으면"

+찬미 예수님

밤새 안녕히 주무셨나요? 요즘 낮 기온을 보면 이번 여름 더위가 걱정이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어리둥절합니다.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가, "조금 있으면" 볼 수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요한 복음서의 방식으로 수난 예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공관 복음서에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면 요한 복음서는 제자들에게 고별사와 같은 방식으로 "죽음과 부활"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설명하셔도 간접적으로 설명하셔도 제자들은 못 알아듣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아직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2. 코린토 선교

어제 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께서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최고 의회가 열리던 곳에서 창조주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설교를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과 회개를 요구할 것을 의원들과 철학자들과 시민들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몇몇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코린토로 가서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여기서 로마인 부부인,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만납니다. 그런데 마침 천막 만드는 일인 생업이 같아서, 함께 지내며 일을 하게 됩니다.

이후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합류하면서 바오로는 이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그리고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집에 머물며, 회당장 크리스포스와 그 집안 그리고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면서 반대받고 모독하는 말을 듣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3. 우리는 사도들처럼 부활의 기쁨 속에 있는가?

그러면 그분는 어떻게 역경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그 열정은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것처럼 "조금 더 있으면" 당신을 보게 될 것이라는 회심 체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는 주님 부활이 그 배경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사도들처럼 주님의 부활의 기쁨 속에 살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지 못하고 부활에 관해 회의를 품거나 아직도 세상의 역경과 악이라는 근심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은 아니지요.  

4. 화답송 시편

화답송 시편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