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복음
말씀의 초대
입타는 암몬 자손들을 쳐부수고 돌아와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번제물로 바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길 수 있다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1,29-39ㄱ
그 무렵 29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길앗과 므나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길앗 미츠파로 건너갔다가,
길앗 미츠파를 떠나 암몬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30 그때에 입타는 주님께 서원을 하였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31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32 그러고 나서 입타는 암몬 자손들에게 건너가 그들과 싸웠다.
주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33 그는 아로에르에서 민닛 어귀까지 그들의 성읍 스무 개를,
그리고 아벨 크라밈까지 쳐부수었다.
암몬 자손들에게 그것은 대단히 큰 타격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굴복하였다.
34 입타가 미츠파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딸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그를 맞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
입타에게 그 아이 말고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35 자기 딸을 본 순간 입타는 제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
36 그러자 딸이 입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주님께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들에게 복수해 주셨으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37 그러고 나서 딸은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이 한 가지만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두 달 동안 말미를 주십시오.
동무들과 함께 길을 떠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이 몸을 두고 곡을 하렵니다.”
38 입타는 “가거라.” 하면서 딸을 두 달 동안 떠나보냈다.
딸은 동무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자신을 두고 곡을 하였다.
39 두 달 뒤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0(39),5.7-8ㄱㄴ.8ㄷ-9.10(◎ 8ㄴ과 9ㄱ 참조)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 연구(신약성경 주해)
- "혼인예복"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실천하거나(21,31),
포도밭을 경작하는 소작인들이 제때에 낸 소출을 나타낸다.
교부들은 혼인 예복을 몸에 걸치는 옷이 아니라
마음의 옷으로 보아, 영성적으로 사랑(대 그레고리우스)이나 의로움의 옷(아우구스티누스)으로 풀이한다.
말씀 묵상
주임신부님께서 알려주셔서 성당에 두 명 배정된 지자체 자율접종에 신청을 했는데, 채택이 되어서
저는 어제 드디어 백신을 맞았습니다.
백신을 맞으면 쉬라고 해서, ⟨자산어보⟩라는 영화를 보고 푹 잤는데요.
'자산어보'는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정약용 세례자 요한의 둘째 형 정약전에 관한 시대극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순조 1년 1801년, 신유박해 때 세 형제가 심문을 받고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로 가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흑산도에서 정약전은 해양생물학 서적을 집필하기 위해 극중 인물인
'창대'와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각자가 스승과 벗이 됩니다.
신유박해의 근본 원인은 천주교가 사학이라서 아니라 정치 투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곧, 벽파와 대립하였던 남인 시파의 숙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에 대한 형식적 명목은 '무군무부'였습니다.
한불자전에 따르면, 이는 자신의 임금도, 자신의 아버지도 알아볼 줄 모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화에서 창대라는 인물이 정약전을 처음에 멀리하는 데,
이 이유가 바로 '무군무부'였습니다.
참고로 창대는 정약전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나름 공부에 재능이 있는 어부였습니다.
이런 창대가 정약전에게 물고기에 관해 알려주고 정약전은 성리학을 알려주면서
상부상조하면서 흑산도에서 지내게 되는데,
창대는 출세해서 세상에 나가 자신이 배운 것을 펼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창대가 생각한 것처럼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관직에 올랐지만, 탐관오리의 부정과 부패를 바라만 바야 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무군무부'라는 말을 기억하시죠?
조선시대 천주교를 박해했던 죄목인데요.
당시 조선 사회에는 말로는 임금과 아버지를 대단히 높게 떠받들었지만,
정작 지도층은 정반대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지도층은 임금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백성을 착취하고,
그로 인해 한 집안의 가장은 아버지의 도리를 하기 어려워지게 하였습니다.
유교 이념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사회인 것입니다.
오히려 천주교가 유교 이념을 보완하고 사회 질서를 바르게 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당대 지식인들은 그 내용을 알아보았던 것이죠.
오늘 복음은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혼인 잔치는 하느님이 마련해 주시는 종말의 날을 암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혼인 잔치에 초대를 하고 종말의 날에 잔치를 즐기자고 하는데,
정작 초대받은 이들이 거부하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것을 두고 우화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우화에 나오는 초대받은 이들은 다른 일들 때문에 임금의 초대를 거부합니다.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중에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부르심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고 하십니다.
실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나라에 천주교가 전해지는 방식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혼인 잔치의 비유로 보자면 우리 나라는 초대받지 못한 이들에 속하였습니다.
아니, 종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혼인 잔치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서학서를 통해 혼인 잔치가 있고, 임금 위에 더 큰 임금이 있고, 아버지보다 더 큰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임금이며 참 아버지죠. 그것을 <대군대부(大君大父)>라 합니다.
이 잔치와 초대가 무엇인지 알고 목숨 걸고 지켰던 분들이 박해시대 때 순교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유에서 나오는 것처럼, 오늘날은 더 많은 사상과 이론 이념, 유혹이 많아졌기에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않은지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