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어제 이런 뉴스가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을 위해서 모기업에서 지역 식당과 연계해 도시락을 지속적으로 나눠주고
어느 기업은 천연조미료 1년 치를 기부하고, 또 다른 기업은 모자를 기부하고
어떤 이는 1,500만원 기부하는 사연이었습니다.
그 기사 댓글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빵의 기적’이 나오는데,
오늘날 ‘빵의 기적’이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빵의 기적’이 그때만이 아니라,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당연히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빵의 기적’이라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완고해져서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겁을 먹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유령인 줄 알았던 거죠.
그러면 그들은 왜 아직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하느님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오늘 독서를 보면,
하느님의 사랑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사실로 상호내주, 곧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이것은 단순히 우리끼리만 사랑하는 ‘배타적인 혹은 배제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사랑은 순전히 환상입니다. 상상속의 사랑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한 사랑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두려움을 몰고 옵니다.
용기 있게 나아가는데 방해를 합니다.
나약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사랑이 성부와 성자의 사랑에 동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사신 것처럼 살아가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단절된 삶은 우리를 예민하게 만들고 감정 조절을 어렵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하느님께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해야 하며, 배워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남들의 선행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우리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이들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이웃들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시기,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눈을 돌려 용기를 내어 사랑을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