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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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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착한 사마리아인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혹자는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설명하기 위해

루카 복음 사가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이웃 사랑), ‘마르타와 마리아 방문 사화’(하느님 사랑)를 연이어 배치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시각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잘못 말씀하시고 계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치 마리아를 편애하는 듯 느껴집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마리아한테서 거기 있지 말고 시중드는 일 좀 도우라고 말씀드려도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자가 말씀을 배우는 게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발치에 앉는 것은 그의 제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 행동은 남자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대 유다교 관행을 거슬러 여자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 역시 말씀을 배우는 일이 허락되지 않던 당시 여자들과 다른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오늘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왜 마르타야에게 저렇게 말씀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 일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유혹자가 돌들보고 빵이 되라고 해 보라고 유혹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 됩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한 실천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거 너무 쉬운 거 아닌가요?

 

복음 환호송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