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거리'였던 성 아우구스티노
어제 우리는 성녀 모니카 축일을 지냈습니다. 성녀 모니카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이십니다. 어제 모니카 성녀를 설명하면서 아들이 ‘기도 거리’였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아들이 회심하고 나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하느님에 대한 성인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그를 한 순간도 포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인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하느님은 마치 매정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복음(열 처녀의 비유)
그 상황은 대략 이러합니다. 비유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합니다. 혼인 잔치 문이 닫히고, 이후 기름을 사고 온 처녀들은 혼인 찬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청하지만 신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물론 비유는 교훈적이 요소가 있습니다. 평소에 딴 짓하지 말고 주님 말씀을 잘 듣고 깨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 때까지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까지 사랑과 자비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매정하게 보여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단호한 말씀을 하십니다. 심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인간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독서(십자가의 복음, 1코린 1,17-25)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고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일반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 받은 이에게는 하느님의 강력한 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지혜와 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사랑의 호소에 개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학생 귀원
오늘날에도 이렇게 어리석음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려고 성직을 지망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저희 본당에는 이와 같은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이제 여름 방학 사목 실습을 마치고 신학원으로 돌아갑니다. 신학생들이 하느님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