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선한 일'이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복음은 시작한다.
이에 예수님은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하고 말씀하신다.
사실 이 답변에서 부자 청년의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선한 일이란 하느님처럼 살아가는 것뿐이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정확히는 주님의 자비로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이다.
계명을 지켜서, 내가 선해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부자 청년은 자기 노력과 정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한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선하신 분인 하느님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 내면에는 가난한 이웃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구원의 주체와 자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젊은이에게 예수님은 한 가지 방법을 일러준다.
그가 그 방식을 실천하였다면 다음과 같이 깨달았을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지를 말이다.
그가 잘못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천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보다 재물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무엇에 집중(집착)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하느님과 이웃인가? 아니면 그 외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