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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태 13,51-52_울프강 트릴링

비교의 결론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참된 의미와 요지를 제자들이 이해했는 물으신다. 듣는 것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넘어와야 한다. 행동은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설교를 통해 들은 바를 깊이 이해하는 자만이 자신의 지식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나의 생각 -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반복하고 숙달하는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닐까. 완덕을 위해서는 말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이해했지만, 실제로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원수 사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를 듣고 감동하고, 유익하고 필요한 교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이해하려고 하면 비유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부르심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자신의 전체를 사로잡는 이러한 이해만이 말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활짝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제자들의 응답은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맡게 되는 임무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들은 바를 가르쳐야 되지만, 스스로 이해하고 자기가 들은 바와 하나가 되고 스스로 믿을 때 비로소 예수님과 똑같은 힘을 가지고 가르칠 수가 있다.

 

비유의 장은 교리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다.

복음사가는 그런 식으로 편집을 하였고 다시 한번 끝에 가서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남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비유를 싣고 있는 이 장은 이러한 목적으로 쓰여 있다. 이 장은 설교가와 교리 교사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리가 어떻게 표현되며,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 줄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이 장은 교회 안에서의 교육 방법을 보여 주는 하나의 본보기다.

 

새 율법학자들

가장이 자기 가족을 돌보고 필요한 것들을 말련해 주듯이 교회의 교사도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 필요한 대로 줄 수 있는 집주인과 같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새로운 것, 매력적인 것, 국부적인 것에만 한정될 수 없으며, 옛것과 전통적인 것, 절대 확실한 것도 선포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현대적인 것과 결합시켜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을 폐기시키고 그 대신에 다른 율법을 주지는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유산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존하셨지만 새로운 유산으로 그것을 완전케 하셨다. 마찬가지로 이 비유의 장은 새것과 옛것을 결합시키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래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흐르고 있는 옛것은 하느님 나라라는 중대한 주제다. 새것은 예수님의 도래와 메시지에 의한 옛 것의 완성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과거와 철저히 관계를 끊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치를 원하신다.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행동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엣것은 대대로 전통을 통하여 교회 안에 항상 실재하지만 언제나 보다 깊은 이해와 보다 완전한 통찰력과 보다 나은 실현을 추구하고 있다.

 

울프강 트릴링, <신약성서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 복음>, 280-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