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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강론

우리는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기쁜 일도 있지만 그 순간과 기억은 아쉽게도 길지 않습니다. 행복한 순간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다시 반복되는 생활과 일종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움직여야 합니다. 더욱이 내가 세운 목표가 원대할수록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은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표에 도달을 해도 잠시뿐입니다. 어쩌면 그 끝이 없는 여정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거나 쉬게 되면 다시 목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난과 역경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신앙생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참고 기다려야 하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는 이유를 물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합니다. 고달픈 인생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하느님께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의 평화로 끝나지 않고 욕심이 생겨 나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할 때는 그 평화가 유지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기도의 응답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가령, 자식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수 십 년 했는데, 자신의 기대와는 많이 달라진다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신앙생활 또한 참고 기다리며,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신앙생활에도 인내가 요구됩니다.

 

오늘 복음은 밭의 가라지 비유에 관한 해설 부분입니다.

이전 복음인 비유 자체에서는 주인의 인내가 강조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와 관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종말에는 악인들은 어떤 심판을 받고, 의인들은 어떤 상급을 받을 것인지에 관한 판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인과 악인이 최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판결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기다리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니 가라지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완성 앞에서  '귀 있는 사람'은 알아서 깨닫고 성실하게 준비하라는 것을 우의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 유배 시기에 자신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하며 주님께 탄원합니다.

그들의 죄악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거짓된 말을 하고 거짓 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하여도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가진 가라지의 면을 바라보고  주님께 자비를 청하며,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인내하며 믿음을 끝까지 지켜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