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잠을 잤다. 책 뒤에 각기 다른 해설이 세 개가 있는데, 그것까지 다 읽고 잤다. 원래 계획은 누워서 이 책에 관해 생각해 보는 거였지만, 계획대로 안 되었다. 전임 교황님과 현 교황님이 왜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약간 감이 왔지만, 해설서를 보니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치 영화 <기생충>을 보고 '잘 만들었네', '재밌네'라고 생각했다가, 영화를 분석한 것을 보고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를 아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먼저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그의 아버지는 대주교이고 본인은 성공회 사제였다가 개종해서 가톨릭 사제가 된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조지 오웰, H.G. 웰스, J.R.R 톨킨, C.S. 루이스, G.K. 체스터턴 등 수많은 작가에게 영항을 주었다.
책 서문을 보면, 저자는 이 책이 파문을 일으킬 것이며, 그에 대한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한다. 그의 진심은 이래야 사람들이 진실에 관심을 가지 것 같아서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를 두고는 다른 문제라고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은 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 두 주인공의 대립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지만 각기 인물에 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볼 거리가 있다. 해설서에는 그러한 부분에 관해 잘 설명이 되어 있지만, 등장인물 개개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게 아쉽다.
코로나 19 시대에 일부 '교회'가 사회에 보여주는 모습은 아쉽다. 이 책에서는 감염병하고는 관련이 없지만, 오늘날 코로나 사태 때 일부 '교회'를 바라보는 것과 소설 속에서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것이 비슷하다. 한마디로 그것들이 '미신'이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세계화와 인본주의 영향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어찌 되었건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 시선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는 '교회'를 공격하게 만든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에 피해 주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변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 소설에서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의 주인'을 찾아 헤멜 것이다.
덧, 이 책과 <호모데우스>와 비교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박해 상황에서 퍼시 신부의 견해
"미사, 기도, 묵주 ······ 그것뿐입니다. 세상은 그 힘을 부정하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그 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겨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건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전부 주님께서 하실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200쪽)
"··· 하지만 퍼시는 모욕이나 죽음 어느 것도 두렵지 않았다. 이미 모욕은 당할 만큼 당해서 익숙하고, 죽음은 오히려 달콤했다. 죽음으로는 적어도 휴식은 얻을 수 있지 않는가.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겼다.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2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