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서>(박병규, 생활성서) 210-212쪽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 이야기다. 포도나무는 구약의 예언서에 자주 나타나는 표징이다. 예언서에 나오는 포도나무 혹은 포도밭은 하느님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곤 한다. 예컨대, 이사야서 5장 하느님께서 그토록 수많은 은총을 베풀었음에도 그분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좋지 않은 포도, 곧 들포도로 묘사한다(이사 5,4). 이처럼 구약 성경에 나오는 포도나무, 포도 열매 등은 대부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늘 끊임없는 사랑을 주시는 분으로, 인간은 그분의 사랑에 확실한 답을 드려야 하는 책임 있는 주체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 당신께서 곧 포도나무라 하신다(15,1). 인간의 살과 피를 지니고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바로 포도나무라 하신다. 여기에서 포도나무는 더 이상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표징이 아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포도 나무는 이제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마무르겠다."(15,4) 여기에서 말하는 포도나무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너와 나라는 구별된 개체로 설명하기 위한 비유적 표징이 아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온전히 하나 됨을 드러내는 장엄한 선포인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머루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사람 역시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면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감히 이런 말씀까지 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15,7; 참조 14,13) 우리의 원의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말씀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께 빌면 무조건 이루어지리라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맹목적인 신앙 논리를 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원의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타인 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또한 그 원의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해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으로 철저히 하나이셨고(15,10),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스스로 인간과 하나가 되셨다(15,8).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열려 있고 그분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이 하느님스럽고 신비스러울 것이며, 우리의 모든 말 또한 하느님의 말씀처럼 언제나 생동감 있고 힘찰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원의와 생각은 자연히 하느님의 뜻과 생각에 닿아 있을 것이며, 우리의 모든 바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모든 것에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