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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

불사불멸의 행복_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제 블로그 제목이 '행복과 불행 사이'다. 혹시 그게 어디에 있냐고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지금 이 블로그다. '행복과 불행 사이'란 이름은 나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고 때로는 평범한 상태도 있다. 물론 행복하기를 원한다. 주님 안에서 행복 말이다. 영원한 행복을 원한다.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찾고 희망하고 묵상하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이 블로그의 이름답게 관심이 가기에 오늘 매일말씀묵상 제목을 '불사불멸의 행복'이라고 지었다.

 

이 부분은 본기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느님,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어 믿는 이들이 불어나게 하시니,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 백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세례성사로 새로 난 저희가 불사불멸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요즘 비염으로 아침마다 고생이다. 변명이기는 하지만, 미사 드릴 때마다 콧물이 나와서 페이스북 미사 라이브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오늘 큰 맘먹고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먹었다. 즉시 효과가 나왔다. 다만 매우 졸렸다. 이 약을 왜 빨리 안 먹었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이 있었다. '약은 몸에 안 좋아.' 그러나 약을 먹고 효과를 보니, 삶의 질이 달라졌다. 그 전에는 무기력했는데, 이제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약을 먹으면 병이 금방 낫는다면, 약을 더 개발하면 모든 병을 치료하고 심지어는 죽지 않는 약도 나오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이런 상상으로 점점 더 신약이나 의술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을까. 옛날 진시황제만이 가진 욕망이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불사불멸만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죽지 않고 멸망하지 않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부활은 단순히 불사불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활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증거고, 하느님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외아드님을 보내주셨다는 것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없애주셨고, 우리와 화해시켜주셨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일으켜주신 사건이다. 모든 것의 시작과 마침이 하느님이시라는 장엄한 선포다. 행복, 생명, 영광이 부활로 인해서 하느님과 함께라면 불사불멸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사불멸은 부활 사건으로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부활이 없다면 불사불멸은 상상 속의 단어일 뿐이다. 실현 불가능한 단어가 된다 

그러나 부활로 인해 불사불멸의 의미가 비로소 명확해지며, 동시에 하느님의 존재도 확실시된다. 

 

부활 사건 없이는 불사불멸의 행복, 불멸의 영광을 이해하기 어려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한 행복과 영광은 의미도 없다.

 

그러나 이 위대한 일이 벌어졌고,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복음인 마르 16,9-15절은 그것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믿지 않았다"로 말이다.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불사불멸의 행복과 불멸의 영광은 너무나 큰 선물이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화답송으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그 소식을 전해야겠다.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네. 의인들의 천막에서 울려 퍼지는 기쁨과 구원의 환호 소리.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은 나를 벌하고 벌하셨어도, 죽음에 넘기지는 않으셨네. 
○ 정의의 문을 열어라. 그리로 들어가 나는 주님을 찬송하리라. 이것은 주님의 문, 의인들이 들어가리라. 당신이 제게 응답하시고, 구원이 되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