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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

연중 제4주일 묵상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4-5.17-19
요시야 시대에 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1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인간의 본성으로는 자발적으로 '예'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예언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에게 싫은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대로 해야 모두가 살게 된다.

 

인간은 전체를 보기보다는 자기 것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코로나 19 감염병 대유행 역시 이론적으로는 정말 간단하게 막을 수 있다. 백신 없이도 말이다.

모두가 정말 조심하면 된다.

차선책으로는 백신을 공평하게 공급하면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선진국과 그 외 국가의 백신 보급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그러면 현재 겪는 것처럼, '변이' 바이러스는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의 공조, 지혜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세상에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

분명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떨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고 하실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예전에 공자가 한 이야기한 것 같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신하가 둘 있었는데, 어느 하나는 임금에게 직언을 해서 참수를 당하고

다른 하나는 참고 있다가 나중에 실력인지 세력을 키워서 임금에게 직언을 하는 경우

어느 신하가 현명한가 하는 것이었다.(내용이 정확하지 않다)

이 이야기를 고등학생 때  접했는데, 그때 나는 직언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두 번째 신하의 경우를 더 높게 여겼다.

그리고 나는 이 두 번째의 삶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