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다이제스트 잡지에 전남순천에 사시는 이영숙 자매님이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셨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주일날 아침 9시 30분쯤이면 꼬부랑 할머니, 유모차 밀고 오는 할머니도 하나같이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 가득 안고 유치원 앞 빈터로 모여든다. 성당에서 보내주는 봉고차를 타고 주님 만나러 갈 희망에 부풀어 모두 기쁘고 즐겁다.
성당 앞에 내려주면 동네 친구를 만나 끌어안고 재잘재잘 정도 많고 말도 많은 할머니들, “쉿! 이제 나란히 자리에 앉아 정성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십시다.” 감사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나오면 천사 같은 봉사자들이 따뜻한 차와 다과를 권한다.
가슴 가득 평화와 위안의 선물을 받고 돌아가던 그 주일날 풍경이 이제는 먼 옛날 추억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일미사도 봉고차도 사라졌다. 집안에 갇힌 노인들은 더러는 평화방송 미사를 드리고 더러는 트로트 프로그램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어느 날 성체조배 드리러 성당엘 가보니 성당 안팎이 썰렁하다 못해 적막 강산이다. 성당 밖 성모님께서 홀로 외롭게 성당을 지키고 본당 신부님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당 주위를 하루에 몇 번씩 걸으신다고 한다.
세검정성당 신자들 또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좀 나아지려니 했는데, 4차 대유행이 와서, 작은 소망마저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세검정성당 주일날 풍경을 설명으로만 들었지만
전남순천의 어느 성당처럼 활기가 넘치고 정겨웠을 것만 같은 상상이 갑니다.
그런데 만약 코로나19가 장기화되어서 4-5년 이상이 되면,
주일 풍경이 글로는 남겠지만,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글을 보면 믿지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아마츠야와 아모스의 토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쪽 유다 왕국에서 아모스를 골라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 설교하도록 보내셨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인 아마츠야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모스는 왕궁의 공식 예배 장소인 베텔에 가서 성전 사제인 아마츠야에게 오늘 독서에서처럼 설교를 하였습니다.
곧, 북 이스라엘에 재앙이 닥쳐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마츠야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은 번영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모스의 예언은 나중에 그대로 현실이 됩니다.
현실을 보면서, 과거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만
예단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현실조차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멸망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지침을 내리십니다.
여기서 제자들을 무전으로 파견하시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여행을 갈 때나 집을 나설 때나 대비를 합니다.
이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하러 나선 제자들에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든 것에 앞서 예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어떤 상황이서든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고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는 전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실 것이니, 걱정말고 복음선포와 구마, 병자 치유에 전념하라는 말씀처럼 보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 아버지를 향해서 찬미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곧, 아버지의 구원 계획에 따라 죄의 용서를 받고 성령의 인장을 받았음에 감사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현재 주일 미사 풍경은 코로나 이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태도는 그때와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진지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더 관심이 가 있으며,
하느님을 더 찾고 있습니다.
만약 그러하지 않다면,
아모스 예언자의 예언과 사도 바오로의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 들어야 하겠습니다.
복음 환호송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