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민수 21,4-9
구리 뱀 사건
복음 :요한 8,21-30
구리 뱀 사건처럼 자신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대로만 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긴 구원의 여정에서 일부분을 하느님과 함께한다. 아담에서 성조를 거쳐 이집트 노예살이와 광야에서 하느님과 함께한다. 전체 여정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만, 자신 속한 시대에서만 자신이 처한 상황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불평이 나온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민수 21,5)
복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많은 말씀과 표징을 보여주셨지만, 십자가와 부활 사건 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다인은 예수님을 이렇게 이해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요한 8,22)
성경에서 말하는 일관된 신학적 흐름은 '죄의 용서 그리고 구원'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다.
공자가 말했다. 삶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논할 수 있으랴.
그렇다. 아버지의 뜻 모르는데, 어떻게 아버지 말을 따를까. 어린 아이가 부모 말을 알아듣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알아듣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는 긴 여정에 놓여 있다. 파스카 사건을 향하는 여정에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무엇인지 모르고 불평하며 산다.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며 산다.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