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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전을 정화하시다(루카 19,45-48)

예수님이 성전에 상인들을 쫓아내신 성전 정화 사건은 네 복음서 모두에 소개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마르코 복음에서는 공생활 말기에 행해진 것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마르코 복음에서처럼 예수님 공생활 말기에 행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은 이 사건을 다른 복음서에 비해 축소 보도합니다.

아마도 루카 복음 사가는 성전 정화 사건의 내용을 축소하고 예수님의 과격한 행동에 대한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예수님이 성전에 대해 무례하거나 불경건한 태도를 지닌 분이 아님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성전은 결코 거부해야 할 곳이 아니라 오히려 잘 이용해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또한 그는 성전 정화 사건이 예루살렘 입성 당일에 있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성전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의 최종 목적지임을 강조하고,

성전 정화 사건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라는 말씀을 삽입함으로써

성전을 '가르침'의 장소와 연결시킵니다.

 

루카 복음 사가는 마르코 복음 사가와 달리 유다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은 동기가 성전 정화 사건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은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전과 성전에서 행하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의 측면에서 볼 때, 성당에서 성전을 비효율적입니다.

쓸데없이(?)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합니다.

성전을 줄이고, 차라리 그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아니면 성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물론 전쟁과 같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그곳을 그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사목자의 적절한 판단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성전은 다용도로 사용하기 어렵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소위 콘서트 장처럼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더 많이 그 공간에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전은 애초에 효율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집이며, 기도하는 곳입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곳입니다.

전례가 행해지는 공간입니다.

 

복음을 보면,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성전)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루카 19, 48)

 

화답송 시편 한 구절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참조 및 인용: 유충희, 루카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