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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론

사도들의 이름 순서

감동적인 설교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금의 입」이 불리는 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와 성서학자이면서 「수덕생활의 수호 성인」인 히에로니무스은 오늘 복음 중에서 사도들의 이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열혈당원인 또 다른 시몬, 유다 이스카리옷, 야고보의 동생 유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었습니다. 마르코는 사도들의 지위 순서대로 이름을 꼽습니다. 사도들을 이끌어 갈 베드로와 두 사도 다음에 안드레아를 꼽습니다(마르 3,13-19). 그런데 마태오는 이런 구분 없이 사도들의 이름을 꼽습니다. 자기보다 지위가 한참 아래인 토마스를 자기보다 앞에 두기까지 합니다.

 

다른 복음사가들은 사도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 마태오를 토마스보다 앞에 둡니다. 또 ‘세리 마태오’라고 하지 않고 그냥 ‘마태오’라고만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의 옛 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마태오 복음사가를 모욕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자신을 토마스 뒤에 둘뿐더러 세리라고 밝힘으로써,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제자들의 이름이 어떤 순서로 열거되는지 살펴봅시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이렇게 표현한 것만 해도 대단한 찬사입니다. 시몬에게는 성품의 훌륭함을 이름에 덧붙이고, 안드레아에게는 첫 번째 사도와의 관계를 밝혀 줍니다. 다음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마태오가 사도들의 지위 순서대로 이름을 열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습니까?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요한은 다른 사도들뿐 아니라 자기 형보다도 더 위대한 인물인데도 뒤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가 나오고,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가 나옵니다(루카도 마르코처럼 이 두 이름의 순서를 바꾸어 씁니다). 그다음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꼽습니다. 그런 다음 “성이 타대오인 레배오”와 “가나안 사람”이라고 부르는 “열혈당원 시몬”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나옵니다.

 

  마태오는 유다를 원수나 적수라는 표현 대신 역사를 기록하는 이의 자세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라고 기술합니다. 그래서 유다를 ‘혐오스러운 자, 몹시 비열한 자’ 같은 말을 붙이지 않고, 단순히 그의 출신지 이름을 따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고만 합니다. 마태오가 유다의 출신지를 기록한 것은 또 다른 유다, 곧 ‘성이 타대오인 레배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카는 타대오를 “야고보의 동생 유다”라고 기록합니다. 이 유다(타대오)와 배반자 유다를 구별하기 위해, 마태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합니다. 마태오는 유다의 배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비난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인데도 그 배반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의 이름 맨 앞자리에 무식쟁이 베드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도를 파견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어부와 세리들이었습니다. 실로 그들 중 네 사람은 어부고, 둘(마태오와 야고보)은 세리며, 게다가 한 사람은 배반자였습니다. 이들을 예수님께서 파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제 강론 때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혹시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혹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는 마음이, 아니면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우리를 오늘도 부르십니다. 비천한 어부들과 멸시받는 세리들을 부르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길 잃은 양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참고 문헌: <교부들의 성경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