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How)
② 어떤 기도가 효력이 있을까? (What prayers work?)
③ 어떤 기도에는 응답이 있고 어떤 기도에는 묵묵부답인 듯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Why)
④ 대체 기도는 어떻게 '작동'할까? (Run)
위와 같은 질문을 종교학자, 수도자, 일반 신자가 던진다.
많은 연구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도는 많이 하지만 여전히 기도의 방법이나 의미를 알지 못해 애를 먹는다.
성경에서는 기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노아, 모세, 야곱, 아브라함, 예레미야, 다니엘, 히즈키야, 에스테르, 베드로, 바오로의 공통점은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꾸준히, 그리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온전한 기도를 바쳤다. 예수님도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앤서니 드 멜로에게서 영감을 얻어 네 가지 기도 '규칙'을 만들어 보았다.
첫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
둘째, 용서하고 기도한다.
셋째, 인내하며 끊임없이 기도한다.
넷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규칙 1: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마태 9,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태 21,21)
바르티매오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오늘날에도 치유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기적을 행하는 듯 보인다.
믿음과 기도의 응답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은총과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를 조종하거나 우리 위에 군림하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오히려 우리가 그 은총과 사랑을 깨닫고 누리게 하기 위해서 자유로이 받아들일 방법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마음과 의지로 당신께 협력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믿음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열린 문이다.
믿음은 우리 실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분의 은총에 협력하기를 원하는 우리 마음의 신호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코 복음서의 놀라운 권고를 따를 수 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느님께 청한 것은 이미 받았다고 믿을 만큼 강하고 순수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참으로 받고자 하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규칙 2: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다면 먼저 용서해야 한다.
전례에 참여할 때 실천해야 하는 조건이 용서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3)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씬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
예수님은 이 두가지 권고로써 분명한 인과 관계 아니어도 화해하는 것이 기도의 응답과 연관될 수 있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적어도 앙심이나 분노를 품고서 기도의 응답을 바랄 수는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기도할 때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그에 반하는 것은 장애물이 된다.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요청에도 계속 응답이 없다고 느껴지면 주변의 관계들을 돌아보고, 하느님의 본질을 거스르는 것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청을 들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규칙 3: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보았듯이 우리 또한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소돔을 파괴하시겠다는 하느님과 협상하듯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의인 쉰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의인 마흔여섯을 찾을 수 있다면 … 의인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혹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창세 18,16-32 참조). 아브라함은 대담하게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집스레 청하고 또 청한다.
예수님은 한밤중에 이웃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 뒤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거이다."(루카 11,9-10).
우리가 기도를 통해 청한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은 때로 기대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확장되기를 원하시기에 우리의 열망을 더디게 들어주신다.'라고 말했다. 거절당한 만큼 우리의 열망은 커지고 욕망은 늘어나서,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충만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즉시 받지 못했다고 절망하여 청하기를 멈춘다면 이 모든 과정도 멈추어질 것이다.
규칙 4: 마지막 규칙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 규칙은 두 번째 규칙처럼 교회의 전례 전통에서 확인할 수 있고, 그 근거는 예수님의 말씀에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너희가 내 이름을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의 친밀한 관계에 의지한다. 성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청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주시리라 믿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실 것이라고 한다.
어설픈 비유이지만, 예수님은 마치 높은 권력자 앞에서 우리를 대변하는 시청의 공무원처럼 생각된다. 국회에 무언가를 청원할 때 유력 인사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주의를 끄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자신 있게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변호인이 되신 것은 하느님께서 스스로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히브 7,20-28;9,24-28 참조) 따라서 성부 하느님은 우리가 성자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께 청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규칙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질을 점검하고 그 내용의 틀을 잡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시선에 맞추어 자신을 정리하고,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우리도 바라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평화나 정의, 용서, 더 큰 믿음, 또는 사랑하는 이의 건강을 바라는 것은 모두 예수님과 일치된 기도다. 모두 예수님께서도 원하시는 선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에 대한 복수를 청하거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고급 승용차를 구한다면 그 기도는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꽝스럽습니까!
참조: 기도의 규칙_⟪타오르는 말씀⟫_로버트 배런, 203-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