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8,18-25; 루카 13,18-21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십니다.
하나는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이고 두 번째는 “하느님 나라는 무엇에 비길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잘 아는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원수 사랑, 황금률, 참행복 선언 등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이 지향하는 바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하느님 나라를 지상에 세우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르치시고, 죄인들을 환대하시고, 표징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공생활 내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중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잠재력과 하느님 나라의 성장 동력을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눈에 보기에 작은 씨인 겨자씨는 나중에 다 자라면 새들이 와서 그곳에서 쉴 정도로 커집니다.
하느님 나라 또한 지금은 아주 작아서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완성이 되면 모든 이들이 그곳에서 쉬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됩니다.
누룩의 비유에서는 누룩이 밀가루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듯이,
예수님의 역할은 하느님 나라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 환호송’에서처럼, 하늘 나라의 신비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믿고 희망해야 그 신비를 볼 수 있습니다.
믿지 않고 의심하면, 그리고 바라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기에,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 당하기 십상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고 조롱하고 폭행하기까지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