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루카 2,36-40
아기 예수님의 성전에 봉헌할 때, 시메온과 한나라는 예언자가 등장한다.
어제는 시메온, 오늘은 한나가 나오는 대목이다.
그녀는 84세, 과부로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성전에서 떠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는 차치해 두고서 아기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진리에 관한 또 한 분의 증언자였던 것이다.
증언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증언의 신뢰도는 높아지기에
성탄시기는 계속해서 아기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관한 증언이 이어진다.
여기서 나는 증언을 하는 이, 곧 한나라는 과부에 주목하고 싶다.
얼핏 든 생각은 성당에 매일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떠오른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거의 뵐 수 없지만,
어느 성당에 가든 그런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의 기도로 그 본당의 명맥이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각자 잘 할 때, 그 공동체가 수월하게 돌아가듯이,
이분들의 기도로 공동체에 중심을 잃지 않고 가는 것 같다.
오늘날은 아주 과거와는 달리 어르신들에 대한 대우가 거의 없다.
과거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식의 총량이 많았기에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이고 앞으로는 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존재만으로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나타나기도 한다.
신앙 공동체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이분들의 존재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된다.
그 기도로 공동체가 유지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모습을 보고 이전 세대가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것 같다.
기도하는 공동체는 단숨에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분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
마치 발효 음식처럼, 숙성되는 것처럼, 뜸을 들이는 것처럼
긴 세월을 요한다.
그 시간을 견디어 내면 기도하는 공동체가 꼴을 갖춘다.
그러한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기도하는 어르신들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우리 본당을 위해 우리 대신 기도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