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재상서
부제 때 쓴 리포트다.
우연히 발견했다.
상재상서를 읽고 개인적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제일 먼저 “진리와 덕행은 영혼의 양식입니다.”라는 표현에서는 영혼을 살찌우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신유년(辛酉年:1801)을 전후(前後)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면서도 천주교의 기원과 전통을 조사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역사에 남는 사회적 현상은 대부분 한 가지 원인으로 촉발되는 경우는 드물다.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그러한 사회적 현상이 일어났다. 신유박해 역시 단순히 한 가지 원인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상적ㆍ정치적ㆍ사회구조적ㆍ교리적인 원인으로 박해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후대의 역사가나 학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하였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마도 박해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에 대한 근거는 “천주교의 기원과 전통을 조사해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라는 문장에 발견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목숨은 귀중하다. 그런데 천주교를 믿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 놓고 천주교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오늘날 사회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신유년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면서도 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지를 조정에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그런 것처럼 ‘용산 참사’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면서도 그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습은 다르지만 그 속성은 비슷하다는 것을, 즉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하늘이 주신 것을 성(性)이라 하는데 이것은 하늘이 우리가 태중에 있을 때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라는 문장에 관한 것이다. 이 문장은 누구에 의해 영혼이 인간 육체 안에 자리잡게 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 논리를 더 확대 해석하면 영혼이 어느 시점에 인간 안에 전이되는지를 이 문장 안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한편, 부록에서 볼 수 있듯이, 조정과의 갈등 요소인 제사와 신주 문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에 상재상서를 통해서 박해철회라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재상서는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상재상서를 통해 정하상은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열정과 높은 경지의 교리 지식을 조정과 세상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인 서술로 천주교를 변호하고 천주교의 교리를 정확히 알릴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교회적 차원에서는 확고한 교회관의 확립과 그 당시 교회의 교리와 신앙 수준을 가늠하게 해 주었다.
끝으로 상재상서는 비록 짧은 글이지만 천주실의와 영언여작 내용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었다. 방대한 내용을 이 짧은 글에 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 정하상은 간결한 문체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추려 자신의 의사를 이 짧은 글 안에 개진하고 있다. 시대가 박해상황이다 보니 그는 이 글을 쓰면서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작성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그가 혼신을 다해 썼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이 글을 읽노라면 그의 냉철하면서도 논리적인 이성과 신앙의 자유를 갈망하는 뜨거운 열정이 본인에게 전해지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