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화요일 / 재물에 대한 갈망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부의 관계를 다루고 있죠. 어제 복음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2052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느님을 ‘선하신 단 한 분’으로, 곧 ‘최고선’, 모든 선의 근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하시고, 이웃에 관한 계명들을 열거하시면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들을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요약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태 19,16-19).
2053 예수님께서는 이 첫째 대답에 바로 둘째 대답을 덧붙이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호감이 있었지만 부에 더 끌렸고 애착이 컸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복음사가가 그 젊은이가 슬퍼했다고 보도하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갈등이 컸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 이후 오늘 복음은 젊은이에서 제자들로 그 대상이 바뀝니다.
예수님께서는 부과 관련해서 파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은 부자가 아님에도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랍니다. 그것은 제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고, 여러분이 걱정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가난보다는 부를 더 선호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여서가 아니라 부에 대한 끌림을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들어가고 싶은데, 부는 놓고 싶지 않은 마음.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빠져나갈 심산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마음이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제자들은 실제로 모든 것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도 있었겠지만, 재물에 대한 근원적인 애착만큼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행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걱정과 달리, 구원은 사람의 성취로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의 선물임을 강조하며 안도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 때문에 소중한 무언가를 버린 사람은 보상도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각자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있다면 과거에는 어떻게 사랑했고, 현재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고, 미래에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도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분을 위해서 버릴 것과 바칠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드러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