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화요일 강론
* 말씀 요약하기
<제1독서>
미카 7,14-15.18-20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7,20)
- 우리가 잘못했으니, 하느님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예식처럼 느껴진다.
-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침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성찰과 하느님께서 과거 선조들에게 했던 그 자애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복음>
마태 12,46-50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12,50)
-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방문하게 된다.
- 이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에게 속한 진정한 가족의 범주를 말씀하신다.
+찬미 예수님
신자 여러분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없고, 성당 모임 또한 중단된 상태라 만남이나 방문이 제한되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듯이, 2년마다 혹은 3년에 한 번씩 본당을 옮깁니다. 주임신부님은 보통 5년에 한 번씩 이동합니다. 저는 여기가 다섯 번째 본당인데요. 본당을 옮길 때마 부모님과 가족들이 비공식적으로 방문하고는 합니다. 특히 고모는 옮길 때마다 한 번씩 제 영명축일 미사에 몰래 참례하시고 금방 가십니다. 어릴 때도 그렇고 커서도 그렇고 부모님이 제가 활동하는 곳에 계시면 왠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특별히 학습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무슨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라서, 권위나 위신이 떨어질까 봐 그런 것을 두려워해서 그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미사 때 부모님이나 가족의 방문이 방문한다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무언가 모를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마침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 도중에, 정확하게는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방문합니다.
이때 어떤 이가 예수님께 밖에 가족들이 와 있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반문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도 저처럼 가족의 방문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고 이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에 관한 상식을 뒤집어엎으십니다. 과연 예수님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예수님에게 하느님의 자녀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왜 예수님께서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부모와 자식 사이를 갈라놓겠다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기존의 혈연 중심의 가족 관계는 하느님의 뜻의 실천 여부와 상관없이 생물학적 관계라면, 하느님 중심의 가족 관계는 생물학적 관계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하느님 뜻'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당시에는 예수님의 가족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그 가족들을 부러워하는 거 말이죠.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 가족들 통해서 예수님께 다가가려는 생각 또한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생각까지 아시고 가족의 방문 기회를 통해 오히려 그 길을 더 확장시켜 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러니 부러워만 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실행해서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아버지의 자애를 입으면 좋겠다고 여기신 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느슨해졌다고 하지만 혈연을 중시하는 사회입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뼈아픈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다음과 같이 비교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가족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해야 하는구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가족을 버리고 하느님을 더 사랑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비교급이 아니라 절대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면 나도 주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겠구나 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오히려 혈연 중심의 좁은 가족에서 하느님 중심의 넓은 가족 중심으로 나아가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교형 자매라고 부르며, 대부 대모라 부르고 신부 수녀를 영어로 Father파더, Sister시스터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가 세례로 하느님 가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말로 고백한 것으로 삶으로 고백하는 중차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죠.